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경제 view &] 상생의 필요충분 조건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회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논의가 무성하다. 대기업 압박을 주 내용으로 하는 극단적 개입주의로부터, 이런 논의 자체를 포퓰리즘으로 인식하는 극단적 시장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분석과 처방이 나오고 있다. 기업 간 협업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나 어느 일방에게만 부담이 되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기되 산업 지원의 틀을 다시 짜고 정부가 효과적으로 개입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업들은 독자적으로 경쟁하는 한편, 특정 공급망(supply chain)의 일원으로서 집단적으로 다른 공급망과도 경쟁한다. 그들이 속한 공급망의 업스트림에서 다운스트림까지 최적의 멤버로 팀을 구성해 상호 협력한다. 경쟁이 심화되고 경영위험이 증가할수록 공급망 내부의 분업과 협업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공급망 참여 기업들은 고객가치 창출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된다. 1954년에 4개의 트랜지스터로 만든 50달러짜리 라디오(현 시가로 450달러)는 부품인 트랜지스터가 핵심 부가가치였고, 최근 2560억 개의 트랜지스터(32기가바이트 낸드플래시 외장메모리)가 장착된 스마트폰의 경우는 일부 완제품 업체들이 최대의 수혜자가 됐다. 반도체 산업 구조조정이 계속돼 한국 기업들이 최후의 승자로 남으면, 이들이 휴대전화와 PC공급망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주도권을 쥐는 쪽은 부품일 수도 완제품일 수도 있다. 기업 규모나 국적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공급망의 경쟁력보다는 중소기업 진흥대책의 일환으로 협업 문제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인 완제품업체는 우월적 지위에 있고 중소 부품업체는 취약하므로 대기업의 지원과 양보가 대전제가 돼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방식만을 고집하면 한국 기업이 주축이 되는 최적의 다국적 공급망 구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대책을 검토해야 할 것 같다. 첫째, 대기업이 하도급 위반 등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도록 정부가 규제해야 하는 경우다. 종래 과도한 처벌로 기업에 부담을 주거나,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로 규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가 일관성 있게 규율을 확립해 기업들이 준법경영을 철저히 실천하게 해야 한다. ‘공정경쟁 측면의 상생 필요조건’이다.



 둘째, 대기업이 중소 협력업체 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하지만 지원 효과가 해당 대기업에만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원을 철회 또는 축소하는 경우다. ‘시장 실패’ 현상이다. 대기업의 기술을 제공받은 협력업체가 다른 기업에도 납품한다면 대기업은 지원을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원이 적정 수준에 이르도록 정부는 유인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지원 혜택은 협력기업에 돌아가도록 설계함이 바람직하다. ‘산업정책적 측면의 상생촉진 필요조건’이다.



 셋째, 대기업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협력업체를 지원하고 있으므로 정부 개입의 여지가 없는 경우다. 포스코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간에는 이미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상당한 수준의 상생관계가 이뤄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국내 대기업과의 협업에 머물러서는 성장 기회가 제한적이다. 외국기업과도 협업을 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 중소기업 자체의 노력과 더불어 지원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우선 천 개가 넘는 지원제도를 몇 가지의 핵심 사업 중심으로 통폐합하고, 기업별 또는 산업별 지원은 점차 인력·기술 중심의 기능별 지원으로 전환해 지원효과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지원이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에도 미치도록 하되 ‘졸업제도’를 도입해 지원 기간과 규모의 상한선을 둠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부 설치 주장과 같은 ‘기업별 지원방식’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콜마의 윤동한 회장은 “중소기업이라고 국가가 특별히 지원할 필요는 없고, 인력공급이나 제대로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넥슨의 김정주 대표는 창업 준비생들에게 “좁은 시각에 머물지 말고 글로벌 시장을 보라”고 한다.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모든 중소·중견기업이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각오를 해야 한다. 기업의 홀로서기 의지와 정부의 지원제도 혁신의 결과로 얻어질 ‘협력기업의 경쟁력이 상생의 충분 조건’이다. 필요충분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킨다면 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이 국내외로부터 협력의 러브콜을 받게 될 것이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회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