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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위기는 오만의 그림자

박신홍
정치부문 차장
위기(crisis)의 어원은 ‘krinein’이란 그리스어다. 구별·분리·선택 등의 뜻을 담고 있단다. 전환점·분기점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원래는 ‘회복과 죽음의 분기점이 되는 갑작스럽고 결정적인 병세의 변화’를 가리키는 의학용어로 쓰이다가 근대 이후 사회·경제적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1930년대 경제공황도 ‘crisis’로 표현됐다. 요즘도 경제계에서는 5월 위기설이니 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나돈다.



 정치권에서도 위기론은 단골 메뉴다. 국가안보의 위기, 정권의 위기에서부터 최근엔 신뢰의 위기, 소통의 위기까지 등장했다. 쌍방향 정치시대의 새로운 위기 패턴인 셈이다. 4월 총선이 끝난 여의도 정가에도 위기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엄연히 승자와 패자가 갈렸지만 위기론에 노출되기는 여야가 따로 없다.



 민주통합당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던 정치지형 속에서도 새누리당에 제1당을 내줬다. 하지만 뼈저리게 반성하고 성찰하기는커녕 곧바로 원내대표와 당 대표 경선에 돌입했다. 새누리당도 승리에 도취돼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뜨렸다. ‘박근혜 대세론’에 대선후보 옹립 주장까지 나왔다. 유권자는 안중에 없고 잿밥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국민은 왜 총선 직후에 정치권이 일제히 전당대회와 대선 국면으로 옮겨가는지 관심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오로지 보고 듣고 싶은 것은 패자의 통렬한 사과와 승자의 겸손이다. 삼보일배까진 아니더라도 패자가 엎드려 용서를 빌면 “아이고, 내가 좀 더 도와줄걸. 다음엔 꼭 찍어줘야겠네”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 거다. 승자가 2030세대와 수도권 표심을 위해 더욱 정진하겠다며 고개를 숙이면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라면서도 “그래, 내가 찍길 잘했네”라는 생각이 들 거다. 이런 게 인지상정인 거다.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민주당은 여전히 ‘반MB’만 외치고 새누리당은 김형태·문대성 당선인 처리를 미적거리니 국민은 “역시나”라며 고개를 젓는 거다.



 위기는 오만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실체 바로 뒤에 따라온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손에 잡히진 않지만 그림자의 그늘은 누가 봐도 선명하게 구별된다. 오만의 껍질 속엔 무지와 태만이 숨어 있다.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게으름이 위기를 낳는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유연해질 수 있다. 그래야 국민과 진정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엔 머리로 이해했는데 눈높이가 같아지면서 어느 순간 학생들의 아픔이 가슴으로 전달되더라”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체험담은 그런 점에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의 합성어다.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지, 오만의 그림자를 끝내 외면하다 땅을 치고 통곡할지 정치권은 기로에 서 있다. 5월 위기설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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