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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에티오피아의 가정에선 손님이 오면 커피의 생두를 볶는 일부터 시작한다. 까맣게 볶은 원두를 절구에 빻아 진하게 끓여 내놓는다. 국민 4명 중 1명이 커피산업에 종사하며, 일이 힘들 땐 서로 커피를 나눠 마시며 고단한 삶을 달랠 정도로 커피가 그들 삶에 큰 뿌리가 되고 있다.
“차악착 차악착 차악착….”

 시곗바늘을 반세기 전으로 되돌려놓은 듯한 소리가 들렸다.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 동네 방앗간에서 듣던 기계 소음.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가 새어나온 나무판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짙은 커피 원두색 피부의 여성 수십 명이 양손에 둥근 양은 쟁반을 잡고 박자를 맞춰가며 무언가 열심히 체질을 하고 있었다. 그 위에 놓인 것은 커피 생두였다. 비록 남루하긴 해도 그들이 걸친 다양한 색상의 옷과 허공에 펼쳐졌다 다시 쟁반에 담기는 푸른 빛 커피 생두가 어우러져 파스텔톤 총천연색의 묘한 분위기를 냈다. 박자 소리까지 듣고 있자니 무대 위에 오른 민속 공연을 보는 듯했다.

 나는 지난달 22일 에티오피아로 여행을 갔다. 커피의 본고장에서 커피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직접 보고 싶은 욕심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내 생애 최초의 커피 여행은 너무 길었다. 지난 6일까지 장장 16일의 긴 여정이었다. 앞서 소개한 풍경은 짐마(Jimma)의 예부(Yebu) 마을 커피 생두(生豆) 처리장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20여 시간 만에 도착한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다시 자동차로 한나절을 달려가 겨우 커피 생두 처리장에 도착했다.

글·사진=유지상(맛 칼럼니스트)



“지난해 수확해둔 커피 생두의 이물질을 골라내는 겁니다. 외국으로 수출할 것이어서 좀 더 신경 써 작업을 합니다.”

 작업반장 우바투(Ubatu)의 설명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공연’이란 단어가 머쓱해졌다. ‘여성’이라고 표현한 사람 대부분이 10대 여자 아이들이었다. 나이보다 폭삭 늙어 보이는 30~40대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엄마를 따라온 어린아이들은 엄마 옷자락을 잡고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먼지가 풀풀 이는 현장이지만 조잘조잘 수다 소리와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우바투는 “작업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하루 일하면 80~150비르(Birr·6000~1만2000원)를 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건너편 창고에선 남정네의 생두 포대를 나르는 일이 한창이었다. 인부 50여 명이 줄을 지어 100㎏짜리 포대를 가볍게 등에 지고 부리고 있었다. 이들 역시 흥겹게 박자를 맞춰 노래를 불렀는데 아마도 커피 노동자의 노동요인 모양이었다. 같은 시간 작업장 철문 앞 비포장도로엔 산더미처럼 생두 커피 포대를 실은 트럭이 아슬아슬 뒤뚱거리며 짐마 시내에 있는 생두 수출 물류창고를 향해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커피가 에티오피아 경제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볼 수 있는 현장입니다. 에티오피아 전체 수출 규모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품목입니다.”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직접 커피 농사를 짓고 있는 한국인 비니엄 홍(49)이 설명했다.

짐마 시내에 있는 제베나(Jebena) 모형물. 커피 원산지임을 알리는 표지다.
 다음 날 찾은 곳은 예부 마을 근처에 있는 칼디(Kaldi)의 동산. 세계적 커피 발원지로 꼽는 곳이다. 세계 최초의 커피 발견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에티오피아 목동 ‘칼디의 전설’ 이다. 커피(Coffee)란 단어도 칼디의 동산이 있는 카파(Kaffa)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기원전 6~7 세기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에 칼디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기르던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따 먹고 흥분하고 날뛰는 것을 목격하곤 자신도 그 열매를 먹어봤는데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솟았다. 그것이 시발점이 돼 커피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얘기다.

 아무튼 칼디의 동산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와 숲길이었다. ‘커피가 발견된 곳이면 커피나무가 무척 많을 거야. 커피 나무? 그런데 어떻게 생겼지?’ 달리는 차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양옆으로 고개를 돌려 커피나무를 봤다. 길가에 바나나 나무와 그보다 훌쩍 큰 나무가 몇 그루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아이들 키만 한 나무가 무질서하게 자라고 있었다.

 “저길 보세요. 저 하얀 꽃이 커피 꽃(사진)입니다. 일주일 정도 피었다가 바로 지는데 커피 꽃을 볼 수 있는 건 큰 행운입니다.”

 짐마대학 커피연구학과 웨예사 가레듀(Weyessa Garedew) 교수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꽃이 지면 초록색 열매가 달리고 가을이면 앵두 크기의 빨간 체리가 열린단다. 체리 안에 과육이 있고 그 속에 푸른색 커피콩이 있다는 것이다. 얼른 커피 꽃으로 달려가 향기를 맡았다. 찻잔 속에 담긴 커피와 달리 짙은 향기는 없었다. 라일락이나 장미처럼 요란하지도 않았다. 예민하게 맡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상큼하고 신선한 향이 풍겼다. 푸른 잎을 하나 따 씹어보았다. 풋내만 날뿐 ‘세계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란 명성에 맞는 매력은 느낄 수 없었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보시는 것처럼 야생 커피입니다.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습니다. 비료를 주거나 농약을 살포하는 일도 없습니다. 유기농 커피인 것이죠. 바나나처럼 잎이 큰 나무 아래서 뜨거운 태양을 적당히 피해가며 열매를 맺다 보니 맛과 향이 뛰어나 ‘스페셜티(specialty) 커피’라고 할 정도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웨예사 교수의 신바람 강의가 한동안 이어졌다.

 칼디의 동산은 그냥 평범한 동네 뒷산 바위 언덕이었다. 바위 위엔 소똥, 개똥, 염소똥이 뒹굴고 있었다. 바위엔 아랍어로 칼디의 전설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는데, 아랍어를 모르니 알 수가 없었다. 바위 옆에 칼디의 동산을 알리는 표지석이 놓여 있었다. 한쪽에 짓다 만 건축물도 보였는데 칼디를 기리는 기념관을 건립하는 중이라고 했다. 칼디를 닮은 듯한 목동 둘이 나타났다. 근처에 쇠풀을 먹이려 나왔다가 외국인을 구경하러 올라온 모양이었다. 웨예사 교수는 “올 때마다 칼디의 동산이 훼손되는 걸 느낀다”며 “보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한나절 차를 몰아 아리차(Aricha)에 있는 커피농장을 들렀다. 농장 주인은 피로를 푸는 덴 분나(Bunna)가 최고라며 일행을 원주민 가옥인 투쿨(Tukul)로 안내했다. 분나는 에티오피아인이 커피를 칭하는 말이다.

 에티오피아에선 손님이 방문하면 가장 먼저 커피를 대접한다. 보통 ‘분나 마프라트(Coffee Ceremony)’라고 하는데, 환영의 의미를 담아 손님에게 최고의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커피 대접은 우리처럼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생두를 볶는 과정부터 시작해 절구에서 갈고 끓여낸다. 그사이 주인과 손님은 함께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방 전체에 깐 푸른 풀은 ‘사르(Sar)’라는 것으로 손님을 맞기 위해 주변에서 거둔 풀입니다. 커피 주전자 제베나(Jebena)와 커피잔 시니(Sini)는 전통기구로 이 지역 주방의 필수품입니다.” 이 지역에서 3년간 지냈다는 비니엄 홍의 말이었다.

 생두를 잘 씻어 프라이팬에 올린 뒤 향로에 강한 향을 피우면서 볶기 시작한다. 향긋한 커피향을 내며 흑갈색으로 변하면 절구로 옮겨 빻은 뒤 제베나에 넣어 팔팔 끓인다. 커피가 다 끓으면 준비해놓은 작은 커피 잔에 따른다.

 에스프레소 수준의 강한 쓴맛이었다. 평소에 맛보던 아리차 커피의 농축액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비니엄 홍은 “에티오피아 사람은 좋은 커피는 외국으로 수출하고 일반 가정에선 품질이 낮은 커피를 마신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마시거나 뜨거운 물로 희석해 마시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세 잔을 따라주는데 두 번째 잔은 좀 연하고, 마지막 세 번째 잔은 더 연했다.

 자동차로 오가며 만난 번화한 거리엔 어느 곳이나 커피 세리모니를 하는 커피 판매상이 있었다. 노점을 차리고 손님을 받는 곳도 흔했다. 짐마대학 안에서도 교직원이나 학생이 휴식 시간을 이용해 커피 세리모니를 하며 가볍게 쉴 수 있는 그늘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정집처럼 오랜 시간을 보내진 않고, 가볍게 전통 분나를 마시는 수준이었다. 웨예사 교수는 “에티오피아인에게 커피는 생활의 모든 것”이라며 “즐거울 때는 기쁨을 더하며, 슬플 때는 서로 위로하며 고단한 삶을 달랜다”고 말했다.

●여행정보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디스아바바 볼레국제공항으로 직행하는 항공편은 없다. 베이징∼방콕∼두바이 등에서 갈아타는데 비행 시간만 14시간이고 환승 시간까지 합치면 20시간이 넘게 걸린다. 에티오피아에 입국할 때 공항에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수수료를 내야 한다. 20달러. 황열별(Yellow Fever) 예방접종은 필수다. 입국할 때 증서를 확인한다. 말라리아·장티푸스 등에 대한 예방책도 마련해야 한다. 모기 등 벌레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은 꼭 챙겨야 한다. 수도시설이 부족하므로 물티슈를 넉넉히 준비해야 하고,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야간에는 외출을 삼가는 게 좋다. 화폐 단위는 비르(Birr). 100비르는 7500원 가량이다. 현지에서 쓸 돈은 달러로 준비해 현지에서 환전(1$=17비르)하는 게 좋다. 에티오피아 대표 음식으로 인제라(injera)가 있다. 우리네 흰밥처럼 주식으로 먹는다. 메밀 전병처럼 생겼는데 부드러운 촉감에 새콤한 맛이 난다. 김치처럼 발효된 느낌이다. 인도의 ‘난’처럼 손으로 뜯어서 다른 음식을 싸 먹는다. 커리 형태의 콩 요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닭볶음탕처럼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쓴다. 에티오피아 전통술로 테지(tej)가 있다. 일명 ‘허니 와인’으로 통한다. 꿀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라고 한다. 200mL 정도 되는 투명 유리 호리병에 담아 나오는데 개나리색을 띠고 있다. 시큼하면서 달콤해 목넘김에 부담은 없다. 알코올 농도는 3~6도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특징

특별한 경작 기술 필요 없는 자연의 선물 ‘스페셜티 커피’


일명 ‘스페셜티 커피’로 통하는 에티오피아 커피는 에티오피아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리프트밸리(Rift-Valley) 고원지대가 주 재배지다. ‘자연이 준 선물’이라고 할 정도로 특별한 경작 노하우 없이 자연 상태로 재배한다. 요즘 많이 찾는 ‘유기농’의 오리지널인 셈이다.

 커피 감별사 은달래 아스풰(Endale Asfaw)는 “에티오피아 커피는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수확과 건조·보관 등 유통과정을 정확히 지켜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는 명품이 많다”고 강조했다. 생산지별로 에티오피아 커피를 간략히 정리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이르가차페(Yirga-cheffe·‘예가체프’ ‘이르가체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림)는 부드러운 신맛과 과일 향이 일품이다. 부르고뉴 와인처럼 이르가차페 안에서도 작은 마을 단위의 유명한 커피가 많다. 콩가(Congga)·코케(Koke)·아리차(Aricha)·이디도(idido)·미칠레(Michille)·아다도(Adado) 등이 있다.

 이르가차페보다 북쪽에 위치한 시다모(Sidamo) 커피는 해발 1500~2200m 고지에서 커피나무가 자란다. 단단한 보디감을 갖추고 있으며 은은한 레몬 맛이 특징이다. 레켐티(Lekempti) 커피는 과일 맛이 일품이다. 일본에는 월레가(Wollega)란 이름으로 수출되고 있는데 매니어층이 탄탄하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서쪽으로 526㎞ 떨어져 있는 하라르(Harar)의 커피는 신맛과 모카 향이 두드러진다. 다소 투박하고 와일드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보디감과 밸런스가 뛰어나 즐겨 찾는 사람이 많다.

 에티오피아에서도 커피의 본고장인 카파(Kaffa)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는 짐마(Jimma)와 리무(Limu)가 있다. 짐마는 자연건조, 리무는 수세건조 방식으로 커피를 말린 것이다. 리무는 주로 해외에 수출하는데 스파이시한 맛과 은은한 와인 향이 매력적이다.

 테피(Tepi)는 해발 1200~1900m에 펼쳐진 소규모 개인 농장에서 주로 재배된다. 요란스럽지 않은 구수한 향과 맛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반면 베베카(Bebeka) 커피는 낮은 지대에서 생산되는데, 신맛이 적고 보디감이 좋아 다른 커피와의 블렌딩용으로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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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