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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22) 냉면 디아스포라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갑자기 더워진 봄, 냉면집엔 벌써 줄이 장사진이다. 원래 냉면은 겨울음식이다. 가을에 수확한 메밀이 겨울까지는 짱짱하게 남았고, 말아먹을 동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엔 한여름에 메밀과 동치미는 구경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긴긴 겨울밤, 추운 평안도의 밤을 보내기에는 냉면이 제격이었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라고 노래한 백석의 시 ‘국수’는 바로 냉면의 한 시절을 말해 준다.

 필자는 냉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위인이라 전국의 냉면집을 찾는다. 연전에는 대구에도 평안도 식의 냉면집이 있다는 걸 알았다. ‘슴슴한’ 그 육수와 구수한 메밀로 만든 제대로 된 냉면이었다. 물론 피란민 출신인 이북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부산은 알다시피 피란민의 전설적인 밀면이 있다. 자연스레 냉면의 이동 경로가 그려진다. 그렇다. 바로 육이오 동란의 피란 루트가 냉면 루트와 겹쳐진다. 호남에 유서 깊은 냉면집이 드문 것도 이런 피란 경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해안에는 유독 전통의 맛을 지켜가는 화교 요릿집이 많다. 대개 산둥(山東)반도 출신인 화교가 인천에서 시작해 서해안을 타고 이동하며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짜장면과 짬뽕의 ‘맛 지도’는 화교의 고향인 산둥반도를 바라보며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음식이란 좁게는 한 인간, 넓게는 고향과 민족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남대문의 한 냉면집을 종종 찾는다. 거기 앉으면 실향민 어른들과 무릎을 맞대고 냉면 한 그릇을 나누게 된다. 어른들에게 냉면 국숫발은 고향과 이어지는 통신선이다. 그런데 그 흐뭇한 한 그릇 냉면의 최후는 늘 우울하다. 비워진 그릇처럼 허전해지는 것이다. 갈 수 없는 고향, 냉면으로는 끝내 달랠 수 없는 한이니까 말이다. 나는 이 국수의 역사에서 ‘유민(流民)’의 기운을 읽곤 한다. 냉면 디아스포라.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농축된 냉면 한 그릇이 뿜어내는 민족적 슬픔 말이다.

 몇 해 전에는 이 냉면 역사의 국제적 연장선을 봤다. 일본에서 평안도 실향민이 냉면집을 차려 3대를 이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북쪽의 한갓진 작은 도시 모리오카(盛岡)의 그 냉면집은 한류 바람을 타고 도쿄에 지점을 내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일본인이 그 냉면집 앞에서 줄을 선다. 전쟁과 분단이 만들어 낸 냉면의 오늘은 이렇게 국제성까지 띠고 한 서린 냉면 디아스포라의 새 세기를 맞고 있다. 진부한 클리셰이지만 프랑스의 미식평론가 브리야사바랭의 이 말은 냉면 한 그릇을 앞에 둔 우리에게 깊은 암시를 전한다. “네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 주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유서 깊은 냉면집에 가면 주위를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다. 구석자리에서 국숫발을 삼키는 실향민 노인의 굽은 등을 보게 된다. 그들이 살아생전에 평양의 냉면 맛을 보게 될 수 있을까. 유민의 역사를 끝낼 수 있을까.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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