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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민주 잊고 싶은 이름, 2002년 이회창과…

새누리당 ‘대세론’ 트라우마
경쟁 없는 독주체제 잘나가다
노무현 ‘경선 드라마’ 뒤 역전


왼쪽부터 이회창, 박근혜, 안철수, 고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대통령 선거전에서 잊고 싶은 이름과 기억이 있다. ‘이회창 대세론’(2002년)과 ‘고건 대선 포기’(2007년). 역대 대선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핵심 요인들이다. 양당엔 일종의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나 다름없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세론’이 두렵고, 민주통합당은 ‘안철수 중도 포기’ 가능성에 가슴을 졸인다.

새누리당에서 ‘이회창’을 거론하는 이가 부쩍 늘었다. 17일 정몽준계 안효대 의원이 “이회창 전 총재 시절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한 발언이 시작이었다. 이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1인 체제는 2002년 ‘이회창 모델’로 회귀한 것”(18일 쇄신파 정두언 의원), “예전에 ‘이회창 대세론’이 있었지만 안 됐다. 여러 주자가 나와 당 지지세를 확충하는 게 필요하다”(19일 박근혜계 유기준 의원)는 발언이 잇따랐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자체 경계령은 1997, 2002년 대선에서 겪은 트라우마에서 나왔다. 총선 승리로 ‘박근혜 대세론’이 확산되자 계파를 막론하고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이다. 여기엔 “경선 없이 박근혜 위원장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자”는 17일 이상돈 비대위원의 발언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내에선 당시와 현재의 유사점을 꼽는 이가 많다. 97년 5월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지지율은 47.7%였다. 리얼미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위원장의 지지율(47.9%)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 신한국당엔 박찬종·이한동 고문 등의 대선 주자가 있었지만, 이 전 총재 측은 ‘대세론’을 들어 “전당대회를 조기 개최해 후보를 정하자”고 주장했다. 이상돈 비대위원이 제기한 ‘경선 무용론’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회창 대세론’은 그해 7월 말 아들의 병역비리가 불거지고, 9월 이인제 경기지사가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하면서 동력을 잃고 말았다.

 200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줄곧 지지율 1위를 유지하던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제왕적 총재’란 비판을 샀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요구했으나 이 총재는 거부했고, 박 의원은 2월 말 탈당했다. 이후 3월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이후 지지율은 노무현 55%, 이회창 33.6%로 역전됐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결국 박근혜 위원장은 2002년 비주류 시절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지금의 비주류에 경선이 불공정하지 않을 거라는 의지를 보여주고, 새로운 경선 방식의 검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2002년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백일현 기자

민주당 ‘중도 불출마’ 트라우마
지지율 1위의 갑작스러운 퇴장
표 흩어지고 경선도 물거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바라보는 민주통합당 내부 기류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안 원장의 대선 출마 결심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묻지마 영입론’이 많았지만 ‘장외 역할론’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은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안 원장은 바깥에서 정치권이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을 담아내는 행보를 하면서 적절하게 민심을 관리해야 한다”며 “민주통합당도 안 원장에 매달리는 대신 당내 대선주자들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원장은 안 원장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대선 일정을 밟다가 나중에 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내는 게 더 낫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은 ‘2007년 고건 트라우마’에 대한 반성에서 연유한다는 지적이다. 민주통합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당시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던 고건 전 총리 영입에 많은 공을 들였다. 당내에 정동영·김근태 고문 같은 대선주자군이 있었지만 고 전 총리를 옹립하려는 인사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고 실제 조직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고 전 총리를 총리로 임명한 것은 실패한 인사”라고 비판하고 나서자 고 전 총리는 직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불출마에 열린우리당은 휘청였고 노무현계와 반(反)노무현계 간 핵분열도 본격화됐다.

 ‘악몽’은 계속됐다. 열린우리당은 이후 방향을 돌려 충청 출신인 정운찬 전 총리 영입에 나섰지만 그 역시 그해 4월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MB노믹스’의 대항마로 기대를 모았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8월 독자적으로 창조한국당을 창당해 완주했다. 야권이 기획했던 ‘드라마 같은 경선’은 검토하는 족족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은 “범야권 지지층의 절반을 가진 안 원장이 중도에 포기를 선언하면 그 지지세가 새누리당으로 가거나 공중에 흩어질 수 있다”며 “민주통합당 입장에선 ‘고건 트라우마’의 재현이 가장 우려스러운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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