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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제노포비아

이덕일
역사평론가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는 시조 수로왕(首露王)이 서기 48년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깃발 배를 타고 온 여인을 왕후로 맞았다고 전한다. 여인은 수로왕에게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라고 말하는데, 아유타국이 어디인지는 오랜 논란거리였다. 인도 갠지스 강 상류의 아요디아라는 설과 태국 메남강가의 아유티아라는 설, 허황후의 시호 ‘보주태후(普州太后)’에 착안해 중국 사천성 가릉강 유역 보주(普州)의 소수민족 파족(巴族) 출신이란 설도 있었다. 북한의 김석형은 일본에 있던 가락국의 분국(分國)으로 보았다.

 어느 것이든 먼 외국 출신인 것은 분명한데 그 출신에 대한 반감이 전혀 없었다. 반감은커녕 둘 사이 맏아들 거등은 김씨로 사성(賜姓)해 가락국의 왕통을 잇게 했지만 다른 두 아들은 어머니를 사성해 허씨가 되었다. 현재 600만 명에 달하는 김해 김씨와 양천 허씨, 태인 허씨, 하양 허씨, 김해 허씨와 인천 이씨 등은 모두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후예들이다. 인천 이씨는 신라 경덕왕 14년(755) 아찬 허기(許奇)가 당나라 사신으로 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피신하는 황제를 따라간 덕분에 당(唐)의 황성(皇姓)을 사성(賜姓)받아 이씨가 되었다(김병기, 『가락국의 후예들』).

 경주 괘릉(掛陵) 호석(護石) 중 무인석(武人石)은 서역인(西域人)이라 불렸던 아랍인의 형상이다. 아랍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Ibn Khurdadhibah·820~912)는 『도로 및 왕국 총람』에서 “중국의 맨 끝에 있는, 금이 많은 신라라고 하는 나라에 들어간 무슬림은 이 나라의 훌륭함 때문에 정착했으며 절대로 떠나지 않았다”고 전해준다. 서역인이 왕릉의 호석이 된 것은 최고위 무장의 지위까지 올랐다는 뜻이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군부·경찰, 극우파는 재일 한국인을 희생양 삼아 학살을 자행했다. 임시정부 산하 ‘독립신문’ 특파원의 조사에 따르면 무려 6661명이 피살되었다고 한다. 상해 프랑스 조계 공무국(工務局) 문서(文書·낭트 소장 사료)는 ‘한국인을 잡았을 때마다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조센징들이다. 조센징들이다”고 외쳤으며, 그러면 많은 일본 사람이 뛰쳐나와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고 전한다.

 필리핀 출신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 이자스민에 대해 일부 네티즌이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 수준의 공격을 한다는 소식이다. 인간에 대한 차별의식은 그 자체로 정신병이다. 우리처럼 차별에 시달렸던 아픈 역사를 가진 민족에게는 반역사적인 자기 부정이 아닐 수 없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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