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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부 의존보다 자기혁신을

김용민
POSTECH 총장
20세기 국가경쟁력은 과학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1세기 국력은 과학기술 수준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과학기술이 선진화되지 않고서 대한민국의 장래는 불투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치·경제적 이슈와 함께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 과제에 대해 가치를 공유하고, 또 토론을 통해 차이와 갈등을 조율하면서 해법을 찾아나갈 때 우리나라의 장래는 한층 더 밝아질 것이다.

 올 하반기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하겠다는 과학기술계의 염원과 국민의 성원, 그리고 정부의 의지가 집약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일대 전환점이 될 범국가적 사업이다.

 한편 과학기술계의 큰 관심과 기대 속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가 출범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국가 과학기술의 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국내외 R&D 역량을 결집하고 투자의 실효성을 강화해 왔다.

 이처럼 과학기술 육성에 대한 현 정부의 의지와 실행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정부는 연구개발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의 정비와 예산 배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소위 ‘고위험, 고수익(high-risk high-return)’의 특성이 강한 기초연구나 원천 핵심기술 개발은 2~3년 정도의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적어도 5년에서 20년 정도의 지속적 지원 및 투자가 이루어져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선이나 총선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관된 과학기술 정책들이 필요하다.

 필자가 30년 가까이 미국 대학교수로 있다가 귀국해서 의아해 한 것 중 하나가 ‘우리 과학기술계가 너무 정부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긴 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예컨대 상당수의 교수들은 왜 교육보다 연구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지, 교수들은 도덕성·진실성 면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있는지, 21세기 대한민국의 장래를 걸머지고 나갈 글로벌 리더를 길러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등과 같이 대학의 본질적 사명 달성에 필요한 부분은 대개 정부 지원과 상관없다.

 연구는 연구자의 몫이라 주장하며 자율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연구자에게 부여된 자율을 국익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최대한 선용(善用)할 준비가 잘되어 있지 않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은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을 항상 추구하고 실현하고, 실행할 수 있는 문화와 시스템을 정립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수월성 문화가 과학기술계에 뿌리 내리고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 맞물렸을 때 우리의 과학기술이 선진국형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신과학기술 문화와 이와 관련된 산학협력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연구중심대학, 과학기술계, 정부, 국회, 산업체 등이 협력해 수월성을 정립하고 일관성을 가지고 매진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현 구성원들에게는 불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과 세계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들의 번영을 위해 감수해야 할 고통과 희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수부터 연구원-대학원생-학부생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과 관련된 모든 이들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성원과 정부의 지원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가 변화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대학과 과학기술자들이 자기 혁신의 가시밭길로 앞서 나가야 한다.

김용민 POSTECH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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