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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패스 강호순, 질문 받으면 의도 알고…"

김기환 기자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니체 『선악의 저편』)

프로파일러(profiler)들이 격언으로 여기는 말이다. 프로파일러는 범죄자의 프로필(profile·신상)을 쫓는 사람이다. ‘범죄심리분석관’이라고도 부른다. 범죄 현장에서 모은 증거를 바탕으로 범죄자를 유추해 수사 방향을 제시한다. 검거한 범죄자로부터 자백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수원 20대 여성 살인 사건으로 주목받는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김기환 기자

프로파일러는 범인이 범죄 현장, 또는 그 주변에 증거를 많이 남길수록 바빠진다. 증거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범죄자의 신원을 밝히지 못하더라도 범인의 성격·특징을 찾아내 ‘특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쇄 살인 유형을 분석해 ‘범인은 40대 화이트칼라 남성. 야외 활동을 좋아하고 군 복무 했음. 높은 지능을 갖춤’이란 식으로 용의자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프로파일러는 주로 증거가 부족해 일반 수사 기법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연쇄 살인 사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거나 비상식적인 범죄를 해결하는 데 투입된다. 특히 최근 지능범들이 현장에 증거물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 수사 과정에서 프로파일러의 참여가 늘었다.

영화 ‘양들의 침묵’(1991)에서 FBI 프로파일러 클라리스 스털링(조디 포스터ㆍ오른쪽)이 연쇄살인범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 박사를 심문하고 있다.

미국서 1972년 도입, 국내선 2000년 범죄분석팀 신설

권일용 경감
프로파일러 제도는 1972년 미국 연방수사국(FBI) 내 행동과학부(BSU)에서 처음 도입했다. 연쇄 살인 사건이 잇따라 터진 데 따른 것이다. 이후 영국·독일·캐나다 등으로 확대됐다. 일본은 1995년 공식적으로 프로파일러를 통한 범죄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

국내에선 서울지방경찰청에서 2000년 2월 범죄행동분석팀을 신설하고 프로파일러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국내 프로파일러 1호로 권일용(48)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경감을 선발했다. 그는 1989년 경찰에 입문했다. 1993년부터 과학수사팀에서 현장감식 요원으로 일했다.

서울경찰청은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 직후인 2005~2007년 프로파일러 40명을 채용했다. 이들 중엔 사회학·심리학 전공자가 많다. 채용 방식은 특채·공채로 나뉜다. 특채의 경우 석사 이상 학위가 있어야 한다. 채용 시험에 합격하면 중앙경찰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 각 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등에서 일한다. 공채는 경찰관 채용 시험에 합격한 뒤 일선 경찰서 과학수사팀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 중에서 지원할 수 있다. 현재는 채용이 중단됐다. 정부가 경찰 전체 증원을 제한한 데 따른 조치다.

프로파일러의 역할은 대형 살인 사건을 통해 주목받았다. 2006년 정남규 연쇄 살인 사건, 2007년 보령 일가족 살인 사건, 2008년 안양 초등생 유괴 살해 사건 등에서 용의자를 붙잡는 데 기여했다. 권 경감은 “새로운 범죄 분석 기법을 개발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줬을 때 자부심을 느낀다”며 “피해자와 유족이 억울하지 않도록 수사하는 게 프로파일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프로파일러로서 갖춰야 할 필수 자질로는 강한 정신력·체력, 자기 존중감이 꼽힌다. 시체가 널린 현장을 누벼야 하고, 흉악범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우도 열악하다. 사건이 터지면 지방 여관이나 모텔에서 잠자리를 해결해야 한다. 넉넉지 못한 출장비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보조자 역할이다 보니 공적 평가에서 뒤로 밀린다는 단점도 있다. 국내 프로파일러 중 공로가 인정돼 특진한 사례는 권 경감이 유일하다. 권 경감은 “프로파일러가 범죄자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정신적 혼란을 겪기 쉽다”며 “무엇보다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중생 납치살해 김길태 검거 때도 프로파일러 활약

경찰 실습생들이 경찰수사연수원에서 가상 살인사건 용의자의 지문을 채취하는 실습을 하고 있다(사진 위). 아래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현장을 감식하는 경기경찰청 과학수사대.
최근 터진 국내 대형 살인 사건중에는 프로파일러의 도움으로 실마리가 풀린 경우가 많다. 2010년 3월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 피의자인 김길태(33) 검거 과정에서도 프로파일러의 예측이 맞아 떨어졌다.

사건 당시 부산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들은 김의 범죄 이력·성향, 생활습관, 심리 등을 토대로 그의 생활 반경이 극도로 좁다고 분석했다. 김이 과거 극단적 불안감과 대인기피 등 공황 증세를 보였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11년 동안 교도소 수감 생활을 한 점도 참조했다. 또 휴대전화·운전면허가 없고 인터넷을 쓰지 않는다는 점도 김이 범행 현장을 멀리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란 예측의 근거가 됐다.

결국 김은 사건 발생 보름여 만에 양부모 집과 범행 장소에서 200~300m 떨어진 부산 덕포시장 인근에 숨어 있다가 수색 중인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김은 잡힌 뒤에도 범행을 자백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파일러는 김이 거짓말탐지기에 반응한 내용을 반복해 보여주면서 자백을 이끌어냈다.

2009년 강호순(41) 연쇄 살인 사건에서 강이 범행 일체를 자백한 데도 프로파일러의 집요한 심리전이 역할을 했다. 프로파일러들은 작은 단서가 발견될 때마다 일일이 DNA 감식을 하고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조회했다. 수만 건의 CCTV 화면을 분석해 증거를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강의 자백을 받아냈다.

프로파일러들은 또 강이 고급 승용차를 범죄에 이용한 점을 들어 공범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수사 초기부터 피의자를 강호순 한 명으로 압축했다. 권 경감은 “목격자가 없어 피해자가 강제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작다”며 “피해자가 고급 승용차에 호의를 느껴 올라탔다고 보고 공범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명탐정 홈즈’처럼 소설 같은 수사는 없다고 말한다. 권 경감은 “한눈에 직감적으로 범죄자를 알아보거나 범죄자로부터 턱턱 자백을 받아내는 수사는 있을 수 없다”며 “모든 수사는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타인 고통 무감각하고 양심가책 못느끼는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러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사이코패스(psychopath)’다. 사이코패스는 겉은 멀쩡하지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反)사회적 인격장애자’다. 타인의 고통·슬픔을 공감하거나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른다. 하지만 선악은 확실하게 구분한다. 또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 ‘정상인’처럼 보인다. 그래서 주변에서 쉽게 알 수 없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1920년대 독일 심리학자 슈나이더는 광신·의지 부족·폭발성·무기력 등 10가지 특성을 사이코패스에 속하는 인격 유형으로 분석했다. 2005년 3월 미국에서 검거된 연쇄살인범 ‘BTK[묶고(Bind), 고문하고(Torture), 죽인다(Kill)는 뜻에서 범인 스스로 붙인 이름]가 대표적 사이코패스다. 그는 1974년부터 최소 10명의 피해자를 잔인하게 죽였다. 하지만 붙잡고 보니 두 자녀와 부인을 둔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국내에선 유영철·정남규·강호순 등 연쇄 살인범이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았다.

권 경감은 강호순이 지금껏 만난 사이코패스 중 가장 까다로웠다고 말한다. 그는 “유영철·정남규와 달리 말수가 적고 자기 감정 통제가 능숙했다. 피해자가 자기 영역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올 때까지 절대 분노하지 않을 정도로 통제력이 강했다”고 술회했다. 특히 프로파일러가 질문을 던지면 의도를 미리 꿰뚫고 ‘네가 나를 분석하려 드느냐’는 식으로 대처했다고 한다.

미국 연구진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공격성을 억제하는 세로토닌이 부족해 사소한 일에도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따라서 치료·교화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런 특징을 조기에 발견해 환경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사이코패스 연구 권위자인 로버트 헤어 박사는 “경쟁을 부추기고 승자만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사이코패스 출현을 도왔다”고 분석했다.

조디 포스터, 영화 ‘양들의침묵’서 프로파일러 연기

국내에서 대중에게 프로파일러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은 1991년 개봉한 영화 ‘양들의 침묵’이다. 이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는 FBI 소속 프로파일러인 클라리스 스털링 역할을 맡았다. 스털링은 특수 감옥에서 연쇄 살인범인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를 심문한다. 강화유리를 사이에 두고 프로파일러와 렉터가 펼친 팽팽한 심리전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털링의 상관으로 나온 잭 크로퍼드(스콧 글렌)의 모델은 FBI 최초의 프로파일러인 존 더글러스다.

영화 ‘키스 더 걸’(1997)은 미모의 여성들을 납치하는 범인과 프로파일러의 대결을 그렸다. 정신과 의사 겸 프로파일러인 주인공(모건 프리먼)이 피해자의 공통점을 분석해 범인을 쫓는 내용이다. ‘마인드 헌터’(2004)에선 FBI 신참 프로파일러들이 범죄 실습을 위해 외딴 섬에 모인다. 이곳에서 프로파일러들이 살인자의 덫에 걸려 서로를 믿지 못하고 내부의 적과 싸우는 모습을 그렸다.

‘미드(미국 드라마)’ 중에선 ‘크리미널 마인드’가 프로파일러를 다룬 대표작이다. 프로파일러 팀이 매회마다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각종 흉악 범죄 현장에 출동해 사건을 해결한다. 국내에선 영화 ‘가면’(2007)과 드라마 ‘아이리스’(2009), ‘특수사건전담반 TEN’(2011) 등 작품에서 프로파일러를 소재로 끌어들였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프로파일러는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범인 심리를 추적하기 때문에 영화 캐릭터로서 매력적인 소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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