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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여론 女論] 금발의 한국 여성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미국인 여성 아그네스 데이비스 김(Agnes Davis Kim)은 미국에 유학 온 김주항(金周恒)이라는 조선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일리노이여자대학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 링컨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아그네스는 가난한 한국 청년 김주항을 따라 조선에 와서 1934년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미국인들도, 조선인들도 이들 부부의 사랑의 진정성을 쉽게 믿어주지 않았다. 특히 아그네스가 틀림없이 후회할 것이므로 이들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속단했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그녀의 주변인들은 “만약 당신이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당신의 인생은 비참한 인생이라는 두 글자로 끝나고 말 것”이라며 그녀의 한국행을 만류했다고 한다(‘한국인의 아내로 45년-데이비스 여사’, 경향신문, 1979.6.21).



 또한 조선인들 역시 그녀의 진심을 곡해하고 “교만한 아메리카 여자가 한때 허영과 호기심으로 어떡하다 조선 청년에게 사랑을 주었던 것이니 오래 못 갈 것은 정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어 1936년 4월 30일에는 ‘국제애의 파탄!’이라는 제목으로 갑자기 아그네스가 남편에게서 도망감으로써 이들의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렀다는 허위 기사가 모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김주항군과 액네스 여사-결혼 그 뒤 애소(愛巢)를 찾아서’, 『여성』, 1936.6).



 그녀는 이런 오보(誤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주 터무니없는 소리다. 만약 이 소문이 나의 동무들 귀에 들어간다면 얼마나 그들을 자극해서 나의 신상을 조소하고 또 염려해 줄 것인가? 내가 조선에 온 뜻은 한 가정을 만들고 또 조선민족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려는 데 있다.”



 이들 부부는 해로했고, 평생을 농촌 운동에 앞장선 공로로 1980년에는 월남(月南)기념장을 받기도 했다. 아그네스는 『한국에 시집 온 양키처녀』 같은 책을 미국과 한국에서 내며 한국의 초창기 ‘다문화가정’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집필과 강연활동에도 열성적이었으며 남편과 모은 재산은 대학에 기증했다. 1989년 8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금발의 아그네스는 그 어떤 한국인보다도 활발하고 진지한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다문화가정 결혼이주민 여성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일부 사람이 낭설과 폭언으로 그녀를 공격하고 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은 지켜봐야 알 일이지만, 그녀에 대한 인종차별적 태도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국회의원 자격으로 중요한 것은 이 나라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사느냐다. ‘한국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활약을 바란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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