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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치는 악마와의 계약이다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요즘 시골의사 박경철 보기가 힘들다. 한때 안철수의 분신처럼 여겨졌던 그는 요즘 틈만 나면 그리스로 달려간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빠져 ‘희랍인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그리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 그리스 문명에 대한 방대한 저작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시골의사의 변신은 일종의 ‘자아 찾기’ 또는 ‘정치와 거리 두기’다. 안철수 교수를 대변하다 보니 정치에 휘말려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하든 모두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안 교수와 관련돼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찾아 그리스로 갔다.

 시골의사는 의사라기보다 지식인 사회활동가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 문명과 정신에 대한 현장 탐구와 저술은 그의 본업 복귀다. 그는 짧은 정치 외도에서 자신을 잃었음을 깨닫고 빠르게 본업으로 돌아간 셈이다. 재능과 열정, 시간과 돈까지 겸비한 시골의사의 역작이 기대된다.

 시골의사의 변신을 보면서 ‘정치행위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막스 베버의 직관을 떠올리게 된다. 정치판에 휩쓸리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나쁜 일들이 닥친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야 하는 강제력이 정치다. 정치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골의사는 악마적 힘의 냄새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슬기롭게 비켜간 경우로 보인다. 반면 막말 파문을 일으킨 독설 개그맨 김구라나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시사평론가 김용민은 악마적 힘을 피하지 못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물론 두 사람의 경우는 매우 대조적이지만.

 김구라의 경우 정말 우발적인 희생이다. 정치판에 전혀 끼어들지 않은 김구라가 김용민이라는 막말 동지가 정치판에 뛰어든 바람에 같이 벼락을 맞은 셈이다. 김구라는 처음부터 개그맨이었고, 지금까지 개그만 해왔다. 그래서 그가 과거에 어떤 막말을 했는지 누구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개그니까.

 그의 막말이 살짝 정치판에 걸쳐진 것은 김용민의 막말이 문제가 되면서였다. 김용민과 막말을 주고받은 김구라가 정치판의 주목을 받았다. 김용민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김구라도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누군가 김구라의 막말을 추적했다. 성(性)과 관련된 무수한 막말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위안부 할머니 얘기가 터져 나왔다. 더 이상 김구라의 막말은 그냥 개그가 아니었다. 개그맨으로서 김구라의 존재가치는 사라졌다. 잠정은퇴와 방송중단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김구라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악마적 힘에서 벗어났다.

 더 큰 문제는 김용민이다. 그는 아직 악마적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용민이란 존재를 만들어준 팟캐스트 ‘나꼼수’는 B급 시사토크다. 막말과 욕설이 ‘금기와 성역의 파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 용인됐다. 수감된 정봉주를 위해 ‘비키니 사진을 보내달라’면서 낄낄거리던 저급한 지껄임이 문제가 됐을 때만 해도 “웃자고 한 얘기”라는 억지가 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용민이 정봉주의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야당 후보로 출마하면서는 얘기가 달라졌다. 더 이상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게 됐다. 정치권력을 꼬집고 물어뜯던 나꼼수가 스스로 정치권력을 향해 질주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한 셈이다. 그것도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정치인 김용민에게는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됐다. 오래전에 했던 ‘웃자고 한 얘기’를 더 이상 웃고 넘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용민은 총선 패배 후 근신 이틀 만에 정치판을 떠나 나꼼수로 돌아간다고 선언했다. 과연 그가 돌아갈 나꼼수가 있을까. 그의 정치참여로 나꼼수는 B급의 품위(?)마저 잃었다. 가카를 조롱하던 나꼼수는 이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트위터로 순식간에 퍼진 ‘사도신경 패러디’(전능하사 프레임을 만든 나꼼수를 내가 믿사오며/막내인 국회의원 워너비 김용민도 믿사오니/이는 막말을 전파하사…)는 김용민이 돌아갈 나꼼수란 둥지가 이미 파괴되었음을 말해 준다.

 총선이 끝났지만 아직 악마적 힘에 사로잡힌 당선자가 많다. 표절로 박사가 된 것으로 보이는 문대성이나 동생의 아내를 겁탈하려 했던 김형태 등등. 악마적 힘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은 이들이 진정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베버가 말하는 ‘소명(召命)을 가진 정치인’은 악마가 끼어들 수 없도록 윤리와 도덕으로 무장한 사람이다. 너무 아무나 정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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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