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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⑪ 서정주의 동생 서정태 시인

우하 서정태 시인이 드림줄을 붙들고 서 있다. 자신을 낮추는 집이란 뜻에서 ‘우하정( 又下亭)’이란 현판을 달았다. [고창=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하(又下) 서정태는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의 동생이다. 우하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미당길 14번지에 산다. 길 건너 미당길 16번지에 미당 생가가 있다. 미당 생가는 우하 생가이기도 하다. 그 집에서 미당이 났고, 8년 뒤 우하가 태어났다.

 우하는 올해 아흔이다. 3년 전 미당 생가 건너편에 자리잡았다. 초가 지붕을 올린 흙집을 지었다. 싱크대 딸린 방에서 홀로 숙식을 해결한다. 그날(14일)도 취나물로 한끼를 막 해결한 참이었다.

 “꽃 피었나 보려고 나와 있었지.”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촉촉한 눈망울이었다. 서울서 온다는 기자를 기다렸던 게 분명했지만, 그는 괜히 꽃 핑계를 댔다. 아흔 살 노인인지라 우하는 잘 걷지 못했다. 처마에 달린 드림줄을 잡고서야 겨우 서 있었다. 툇마루에서 바라보면 부모님과 미당 내외의 산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시묘살이 하는 셈”이라고 우하는 얼굴을 무너뜨리며 웃었는데, 얼핏 미당의 얼굴이 포개졌다.

 미당과 우하는 어려서 한 방에서 지냈다. 가운데 누이가 있었으나, 미당은 우하를 특히 아꼈다. 미당의 시적 기질은 어려서부터 압도적이었는데, 우하는 그런 형을 따라 시인이 되고 싶었다.

 미당이 열아홉 살 때다. 동생의 동시를 옮겨 적고, 자신의 시를 덧붙여 공책 한 권을 만들었다. ‘무지개’라고 이름 붙인 가족 문집. 그곳에서 『화사집』(1941)이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하는 평생 미당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그를 ‘미당 동생 서정태’라 불렀다. 우하는 첫 시집을 준비했으나, 한국 전쟁통에 없던 일이 됐다.

 “내가 시를 쓴 건 전적으로 미당의 영향이야. 그런데 미당은 내 시를 한 번도 칭찬해준 적이 없었지.”

 우하는 시를 접고, 기자가 됐다. 1946년 민주일보로 출발해 전북일보에서만 30년간 일했다. 그런 가운데 미당은 한국의 시성(詩聖)으로 자리잡았으나, 친일 논란도 벌어졌다. 우하가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1943년 전북 정읍의 어느 여관에서다. 우하가 물었다. “형님, 조선이 일본에 영원히 먹히는 거요?” 미당이 답했다. “한민족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역사는 먼 훗날 비로소 또렷해지는 거다.” 그 때 우하는 조선 사람이 사라지진 않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분명히 알아주면 좋겠어. 미당은 시인이지 혁명가가 아니여. 젊어서 미당은 내게 벽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미당 문학이 좀 더 의미 있게 남도록 마지막 역할을 하고 싶어.”

 우하는 딱 한 번 시집을 냈다. 86년 동아출판사가 펴낸 『천치의 노래』다. 미당이 그를 불렀다. “네 시 참 좋더구나.” 처음이자 마지막 칭찬이었다. 그 시집의 서문을 미당이 썼다. ‘네가 쓴 시들이 부디 명이 길어서 나와 너의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래 살아있는 것이 되기만을 바랜다. 1986년 1월 29일. 미당 서정주.’

 우하는 요즘도 시를 쓴다. 혹 두 번째 시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우하가 자작시 ‘내 사랑하는 사람(오른쪽 시)’을 읊기 시작했다.

 12년 전 형의 육신은 저 편 세상으로 건너갔다. 또 그 아래에서(又下), 동생의 육신도 형을 따라 갈 것이다. 집을 나서려는데, 우하가 말했다. “자네, 또 볼 수 있을까?” 그날, 미당길에 꽃은 만발했는데, 미당 생가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내 사랑하는 사람 - 서정태


꼭꼭 숨어라

보이지 않게 숨어라

내 어릴 적 술래잡기

사랑한 사람 찾아 나섰으나

보이지 않네


뻐꾸기 울음에 칡꽃 피는

질마재 너머 첩첩산중

절간에나 계실까

돌문 굳게 닫힌

수도원에 계실까


내 사랑한 사람

아무 데도 아니 계시니

이제는 서산에 해도 질 무렵

저승에라도 가서

찾아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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