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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20대女, 전봇대 앞 지나는 순간 뒤에서

지난 1일 오후 10시32분 경기도 수원시 지동초등학교 근처. 이곳에서 못골놀이터 방향으로 60m가량 떨어진 인도 쪽에 검고 희미한 사람의 형상이 포착됐다. 이날 밤 20대 여성 A씨를 살해한 중국동포 우위안춘(오원춘·42)의 모습이다. 그는 집 앞 도로에 있는 전봇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A씨는 초등교 쪽에서 우씨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A씨의 집은 이곳에서 1㎞쯤 떨어진 못골놀이터 부근이다. 평소 회사가 있는 영통에서 집 앞까지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이날은 마을버스가 끊겨 초등교 부근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와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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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봇대 뒤에 숨어 있던 우씨는 A씨가 전봇대 앞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A씨를 덮쳤다. A씨는 넘어졌다. 우씨는 넘어진 A씨를 끌고 바로 앞에 있는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동작은 빨랐고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이 과정은 지동초교 후문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에 고스란히 기록됐다. 경찰은 이 장면을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9일에야 공개했다. A씨는 이렇게 납치돼 우씨의 쪽방에서 13시간이 지난 뒤 다음 날 오전 참혹한 모습의 시체로 경찰에 발견됐다.

 A씨는 납치 후 18분여 만인 오후 10시50분58초 경기경찰청 112센터에 범죄 신고전화를 걸었다. 범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휴대전화를 건 것이다.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 못골놀이터 가는 길쯤으로요. 못골놀이터 전의 집인데”라며 자신의 납치 장소를 거의 정확히 알렸다. A씨는 7분36초 동안 이어진 통화에서 “저 지금 성폭행당하고 있거든요” “내가 잠깐 아저씨 나간 사이에 문을 잠갔어요”라며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 휴대전화를 놓친 뒤에도 “악 악 악 악” 하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이어졌다. 112신고센터 직원 20여 명이 듣고만 있었다. 이들 중에는 위급한 상황이 명백한데도 “부부싸움 같다”는 말도 했다.

 112센터 대응도 문제였지만 CCTV를 빨리 확인하지 못한 것도 경찰의 실책이다. 경찰이 CCTV를 확인했을 때는 A씨가 살해당한 지 한 시간쯤 지난 뒤였다. 조금만 빨리 확인했다면 A씨는 목숨을 구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경찰은 당초 범행 장소 주변에 설치된 7개의 CCTV를 확보해 조사했지만 범행 장면이 찍힌 것을 찾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경기경찰청 김춘식 형사과장은 “피해자의 소재 파악을 위해 CCTV를 확인하다가 범인을 검거한 뒤 나머지 부분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CCTV 확보로 그동안 우발적 범행이라던 우씨의 주장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A씨와 어깨가 부딪혀 사과했는데 욕을 해 홧김에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범행이 빈틈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우씨는 연쇄살인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우씨는 2007년 9월 취업비자로 국내에 입국해 일정한 직업과 주거지가 없이 거제·대전·용인·제주·수원 등을 떠돌아다녔다. 범행 수법도 노련했다. 그는 시신 훼손을 위해 칼을 가는 도구까지 준비했다. 경찰은 그의 행적지에서 같은 시기에 실종되거나 살해당한 미제 사건 피해 여성 135명과 우씨의 연관성을 찾고 있다. 경찰대 표창원(범죄심리학) 교수는 “치밀하게 짠 각본대로 침착하고 신속하게 범행을 저지른 점으로 볼 때 완전범죄를 해온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A씨를 살릴 기회를 여러 번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첫 번째 기회는 부실한 112센터 대응 때문에 날아갔다. 두 번째는 범행장소 10m까지 근접한 순찰차에서 출동 경찰이 졸고 있을 때였다. 동생 A씨의 실종 소식을 알고 형사기동대 승합차에 타고 있던 A씨의 언니는 “경찰관들이 차 안에서 졸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2시간쯤 후 A씨는 살해돼 토막 시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CCTV를 빨리만 봤어도 A씨 생명을 구할 기회는 또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늑장 대응은 이 기회마저 날려버렸다. 빈집이나 공터만 빙빙 돌면서 사람이 사는 쪽방을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것도 경찰 수사의 난맥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렇게 크게만 봐도 경찰은 최소 4~5차례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수원=전익진·유길용·이승호 기자


경찰 또 거짓말…감췄던 CCTV '13초 영상' 보니

"내 입으로 말할수 없을 정도로 시신 심하게 훼손"

시신 훼손하려 칼 가는 도구까지…노련한 범행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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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