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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가 다시 화제라고? … 영화 보고 ‘다 이해했다’ 착각하면 곤란

소설가 박범신은 종종 논산 집 앞 탑정호로 산책을 나간다. 그의 뒤로 물 속에 절반쯤 잠긴 나무들이 보인다. 그는 “물 속에 저토록 오래 잠겨 있으면 나무는 죽는다. 그런데도 계속 자라고 있는 저 나무들을 보면 질긴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했다. [논산=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박범신(66)은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釣亭里)에 산다. 낚시하는 마을이란 뜻이다. 마을 어귀에 매운탕 가게가 늘어서 있다. 그곳에서 그는 일주일에 닷새를 보낸다. 이틀은 서울 평창동 집에 있다. 논산에선 건양대, 서울에선 상명대에서 문학을 가르친다.

 “논산에 내려오면 영 올라가기가 싫어. 겨울 한 철을 보내고 나니 논산에서 혼자 술만 마시고 있더라고. 혼자 있으니 외로움만 깊어지고….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 상명대 석좌교수를 맡기로 했지. 타율적으로라도 서울과 논산을 오가는 생활을 해야겠더라고.”

 3일 오후 논산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논산 자랑부터 늘어놓았다. 논산은 그의 고향이다. 지난해 11월 선생 노릇(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을 마무리 짓고 낙향했다. 반세기 만의 귀향이었다.

 탑정호(湖)를 끼고 이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가에 그의 집이 있다. 아늑하게 들어 앉은 2층 집이다. 그의 집에선 탑정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탑정호는 둘레 30㎞가 넘는 자연호수다. 논산에서 겨울 한 철을 보내면서 그는 하루 종일 탑정호가 몰고 오는 바람을 마셨다.

 지난해 그는 등단 39주년이었고, 39번째 장편소설을 냈다. 논산에서 새해를 맞이하면서 등단 40주년이 됐다. 이제 40번째 장편소설이 쏟아질 참인가.

영화 ‘은교’에서 주인공 한은교를 맡은 배우 김고은. 박해일은 노 시인 이적요로 출연한다. ‘해피 엔드’의 정지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소설? 소설은 잘 안 써져. 1년 이상 소설을 안 썼어. 나로서는 많이 참고 있는 거지. 논산에 오니까 갑자기 쓸 말이 없어. 불현듯 충동적으로 내려온 거니까. 반세기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소설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거지.”

 겨우내 그는 짙은 외로움에 시달렸다고 했다. 외로움을 물리고자 페이스북에 ‘논산일기’를 적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손이 말굽으로 변하는(그의 39번째 장편소설이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것 같아서” 아이폰을 들고 페이스북에 활자를 입력했다. 일기는 술로 눈물로 늘 축축했는데, 그의 소설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는 촉촉한 샘과 같았다.

 그렇게 쌓인 그의 산문이 책으로 묶인다. 25일 출간 예정인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논산일기 2011 겨울』(은행나무)이다. 그는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과 고향 논산을 알리고자 내는 책”이라고 했다. 이번 출간을 시작으로 매년 일기책을 한 권씩 묶을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로서 마지막 시기를 논산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아. 이곳이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50년 전 그곳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새로운 시간의 레일을 따라 새로운 공간에 처음 온 것처럼 여겨지거든.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대상은 당연히 문학이야. 문학에 대한 내 사랑은 이곳 논산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되고 있어.”

 저녁에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은교’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영화 ‘은교(26일 개봉)’는 파격적인 예고편으로 이미 화제가 되고 있다. 2010년 발표한 장편소설 『은교』(문학동네)는 70세 노(老) 시인(이적요)과 17세 여고생(한은교)을 통해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사랑과 욕망이 분출하고, 죽음과 생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수작이다. 최근 영화 ‘은교’가 주목을 끌면서 소설 『은교』도 베스트셀러에 다시 올랐다.

 “존재론적 슬픔이 테마인 소설이지 단지 저급한 멜로가 아니다”고 노(老) 작가는 말했다. 이 말을 할 때, 그의 눈 둘레에는 주름이 패였는데, 『은교』의 노 시인 이적요의 얼굴이 얼핏 스쳤다. 약간의 취기에 기대 그는 말을 이었다.

 “『은교』가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축하 메시지가 오는데 솔직히 기분은 별로야. 예전에는 문학이 영화를 견인했는데, 이제는 영화가 문학을 끌어내는 시대가 됐잖아. 어쩔 수 없는 세태겠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언짢지. 영화를 보고 『은교』라는 작품을 다 이해했다고 착각하면 안 돼.”

 논산 집 뒤뜰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 연못에 금붕어 여남은 마리가 살고 있다. “여기, 이걸 보라고!” 그의 목소리가 다급했기에, 얼른 달려갔다. 연못 한 귀퉁이에 죽은 듯 누워있는 금붕어가 있었다. “이 금붕어가 몇 달째 이 모양으로 근근이 살고 있어.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저 모습을 봐. 경이롭지 않아?”

 고향 집에서 그는 작가로서의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소설을 지어온 마음 밭이 저러할진대, 그 문학의 생명력을 의심할 까닭이 있을까. 노 작가는 작은 금붕어의 생명력에도 눈길을 보낸다. 그 스스로 ‘갈망기’라고 불렀던 시기가 끝난 지금, 그는 또 한번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갈망하는 중이다.

 박범신은 지금 ‘틈’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티베트에서는 죽음과 생성이 교차하는 그 시간을 ‘바르도(bardo)’라고 부른다고 한다. “작가로서 바르도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 이곳에서 살아나가면 또 한번 활짝 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밤늦도록 술잔은 돌았고, 탑정호에선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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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