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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도금의 시대, 개츠비의 시대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 매체경영
뉴욕에서 동쪽으로 두어 시간 달려 롱아일랜드 바닷가 끝 로즈 클리프에 도착한 것은 황혼 무렵, 미국 동북부 대서양 해안에 위치한 하얀 대리석의 웅장한 건물은 저녁 석양에 외롭고도 고적했다. 내가 찾은 저택은 1902년 완공된 이른바 도금시대(鍍金時代)를 상징하는 유서 깊은 건물이다. 도금시대란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1873년 발표한 풍자소설 ‘도금시대(The Gilded Age-A Tale of Today)’에서 유래한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이 농업국에서 본격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탈피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물욕에 사로잡혀 부정부패가 속출하던 시대, 금빛으로 도금한 덕분에 겉만 번지르르한 허황된 시대를 이름하여 ‘도금시대’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정작 도금시대를 세상에 알린 것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다. 동시대의 까칠하기 그지없던 헤밍웨이로부터 미국 현대문학의 지평을 연 최고 걸작으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알려진 대로 미국 중서부 노스다코타 출신의 한 청년의 이야기다. 주인공 개츠비는 가난 때문에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보석을 더 사랑하는 팜므 파탈적인 옛 애인 데이지를 되찾아오기 위해 몸부림친다. 금주법 시대, 주류 밀매로 거부가 된 그는 데이지를 바라볼 수 있는, 장미꽃이 아름다운 언덕에 호화 저택을 장만하고 데이지에게 접근하지만 결국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1920년대 금주법과 스윙 댄스 파티 등 이른바 재즈 시대의 화려한 풍속이 생생히 그려져 있으며 동시대 미국을 지배했던 계급적 모순과 부에 대한 동경, 물질주의가 가져온 비극을 고발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의 인물 묘사를 통해 물질적인 풍요가 경우에 따라선 인간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바뀔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20년대 뉴욕 부자들의 부도덕과 퇴폐상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과 로즈 클리프라는 유려한 대리석 저택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인내심이 필요한 소설보다는 아직은 젊고 풋풋했던 로버트 레드퍼드, 미아 패로가 등장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1974)다. 나는 이십대 시절, 국내 재수입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부터 가끔 개츠비를 상상하며 술을 마셨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면서 언젠가 뉴욕에 가게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반드시 로즈 클리프에 들러, 스스로 파멸되어 가는 한 남자가 가진 슬픔, 좌절, 안타까움을 되새겨 보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이런 유치찬란한 다짐 덕분에 나는 잊혀질 만하면 롱아일랜드 로즈 클리프에 들러, 시가를 물고 대서양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어 있던 개츠비를 상상하는 즐거웠던 순간들을 가진 바 있다.



 뜬금없이 개츠비를 떠올리는 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개츠비의 시대, 천박한 도금의 시대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진짜는 모두가 돌아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고, 싸구려 멕기를 입힌 도금한 것들이 휘황찬란하게 번쩍이고 있다. 어떤 이는 어거(馭車)하기 힘들 정도의 막말을 쏟아내고, 정권은 검찰의 비호 속에 황당하게도 민간인 꽁무니만 쫓아다닌다. 뼛속까지 부패한 무능한 경찰의 외면 속에 어느 가냘픈 처녀는 어둠 속에서 숨져 간다. 재벌들은 주체할 수 없는 금력도 모자라, 남루한 서민의 영역에까지 탐욕의 갈퀴를 뻗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누구 덕에 이만큼이나마 잘살게 됐느냐고 으름장을 놓는다.



 개츠비는 겉만 번지르르한 허황된 시대, 물신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풍요 속에 감춰진 인간 본원의 쓸쓸함과 고독을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 장미의 언덕, 로즈 클리프를 돌아보는 데만 30달러가 넘는 입장권에 조금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가 꿈꾸었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간절함과 진정성은 지금과 같은 도금의 시대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서 나는 피츠제럴드가 그토록 증오했던 황금만능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것에 대해 적잖이 우려하고 있다. 모든 것을 돈으로 가늠하는 시대, 얼마나 더 많은 천박함이 우리 사회에 횡행할지 몹시 두렵다. 이 비틀린 2012년의 한국 사회는 얼마나 더 타락해야 하는가.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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