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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타이타닉 100년의 미스터리

이상언
런던 특파원
타이타닉은 100년 전 오늘 영국 사우샘프턴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불침선(Unsinkable)’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당시 최대의 이 유람선은 4일 만에 빙산과 충돌해 다음 날 새벽 두 동강이 나며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승선자 수가 오락가락해 아직도 피해 규모가 분명치 않지만 최소 1514명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돼 있다.

 침몰 뒤 미국과 영국에서 총 54일 동안 청문회가 이어졌다. 조난 경위와 구명 실패 등의 이유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 빙산을 피하지 못했는지, 1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총 20대의 구명보트에 700명가량만 타게 된 까닭은 무엇인지 등이 조사됐다.

 이 청문회의 기록(인터넷 사이트 www.titanicinquiry.org에 모두 올라 있다)을 보면 가장 집요한 추궁을 받은 사람은 영국 화물선 ‘캘리포니안’의 스탠리 로드 선장, 허버트 스톤 이등 항해사, 제임스 깁슨 견습 선원이다.

 캘리포니안은 타이타닉 침몰 때 가장 가까이에 있던 배였다. 20㎞ 안팎의 거리였다. 구조에 나섰다면 대부분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안은 왜 수수방관했을까. 우선 타이타닉의 구조 요청 무전이 접수되지 않았다. 캘리포니안의 통신사 시릴 에번스는 타이타닉의 타전 35분 전에 무전기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타이타닉은 그 뒤 여덟 차례 하늘로 신호탄을 쐈다. 멀리 보이는 배에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이는 항해사 스톤과 견습 선원 깁슨에게 목격됐다. 여기서부터 증언이 엇갈린다. 스톤은 “깁슨에게 선장실로 가 이를 보고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깁슨은 “침대에 누워 있는 선장이 ‘신호탄 불꽃이 흰색이더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더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로드 선장은 “난 깁슨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 그가 내 방에 온 것은 떠오르는데, 무슨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고 주장했다. 선장과 견습 선원 중 한 쪽이 위증했거나, 선장이 잠결에 보고를 받아 제대로 대처를 못했고 이를 기억조차 못한 것일 수 있다.

 이 부분은 100년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그런데 진술서에 약간의 힌트가 있다. 항해사와 견습 선원은 신호탄의 의미를 놓고 수분가량 대화를 나눈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견습 선원 진술에 들어 있는 선장에 대한 그의 보고는 짤막하다. 스무 살의 초짜 선원이 배에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선장의 권위에 주눅들어 상황을 적극적으로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 한 순간이 타이타닉 조난자들의 운명을 갈랐다. 그리고 선장 로드와 선원 깁슨도 평생 비난과 의심에 시달리는 비참한 길로 이끌었다. 당사자들은 이미 모두 세상을 떠 이제 진실을 밝힐 방법은 없다. 타이타닉 참사는 결국 사람이 만든 일이라는 결론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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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