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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퍼펙트 총선’

이철호
논설위원
4·11 총선이 막판에 눈 터지는 계가 바둑이 됐다. 감히 고상한 정치를 스포츠와 비교하는 무례를 용서하시라. 우선 경기 초반전은 야당이 거저 주워 먹는 듯한 분위기였다. ‘정권 심판’이란 상수에다 ‘민간인 불법 사찰’ 변수까지 겹쳤다. 싱거운 게임은 야권의 헛발질로 반전(反轉)됐다. 공천 잡음-이정희 대표 문자 파문-김용민 막말 사태의 어이없는 자살골이 연이어 터졌다. ‘진영 논리’에 푹 빠진 쪽이야 가슴 졸일 노릇이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선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다. 투표함은 까봐야 안다는 말이 실감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은 현란하다. 견제심리와 동정심리가 맞서고, 밴드왜건(강한 쪽에 편승하는 심리) 효과와 언더독(약자를 응원하는 심리) 효과가 부딪친다고 한다. 판세가 미묘할수록 해설가들은 종잡기 어려운 전문용어와 복잡한 표현을 동원한다. 지금은 듣는 사람조차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꼬일 대로 꼬인 해설을 딱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미안하다. 나도 모르겠다.” 원래 이런 게임일수록 손에 땀이 나는 법이다.

 미국의 TV 시청률 톱10 가운데 9개가 미식축구(NFL) 중계다. 게임 규모는 프로야구가 훨씬 크다. 하지만 시골 팀과 최강의 뉴욕 양키스가 붙으면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다. 결과가 뻔하니 재미는 시들해진다. 반면에 NFL 팀들의 실력은 엇비슷하다. 어느 팀끼리 붙어도 해설가들은 예측을 망설인다. 여기에는 숨은 비밀이 있다. 1962년 NFL 총재였던 로젤의 결단이다. 그는 구단주들을 설득해 아무리 강팀과 약체팀이 맞붙어도 TV 중계료를 절반씩 똑같이 나눠주었다. 각 팀의 재정이 균형을 이루면서 막상막하의 실력이 됐다. 흥미는 배가되고 시청률은 폭발했다. 로젤은 이를 미끼로 다시 TV 중계료를 천문학적으로 올리는 수완을 보였다. 이제 미식축구는 국민 오락으로 우뚝 섰고, TV중계료만 매년 5조원을 웃돈다.

 우리는 그동안 두 번의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만들었다. 결과는 3당 합당과 의원 임대의 꼼수로 얼룩졌다. 또한 두 번의 싹쓸이로 거대 여당도 경험했다. 탄핵 역풍이 휩쓴 17대와, 이명박 바람이 분 18대 총선이었다. 뒷맛은 씁쓸했다. 오만과 독선으로 4년 뒤 탄돌이와 명박돌이 시체가 무참히 나뒹굴었다. 다양한 황금구도를 만들어준 보람도 없이 결국 국민만 골병 든 셈이다. 어쩌면 이번 총선이 사상 처음 새로운 실험이 될지 모른다. 바로 무승부다. 무소속까지 합쳐 범여권과 범야권이 딱 150석의 절반씩 나눠 갖는 구도다.

 무승부가 시들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역대 프로야구 최고의 명승부는 단연 1987년 5월 16일 롯데와 해태의 대결이다. ‘무쇠팔’ 최동원과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의 진검승부였다. 영화 ‘퍼펙트 게임’에 나오는 장면이다. 연장 15회까지 4시간56분간의 혈투. 누구도 자존심을 건 두 선수를 말리지 못했다. 손끝이 갈라지고 어깨 근육이 터지도록 200개가 넘는 공을 던졌다. 그러고도 2대2 무승부로 끝났다. 프로야구는 그 후 더 이상의 치열한 역사를 쓰지 못했으며, 이 시합은 전설로 남았다. 어찌 보면 무승부가 최고의 명승부다.

 정치도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했으면 싶다. 스포츠 관중은 평균 집중 시간이 20분이라고 한다. 어떤 드라마도 20분 간격으로 흥분을 자아내지 못하면 몰입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축구에는 18분마다 번갈아 골이 터지는 3대2의 ‘펠레 스코어’가 있다. 야구도 ‘케네디 스코어’인 8대7 게임을 최고로 친다. 선수들은 사력을 다하고,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NFL의 기적을 일군 로젤의 혜안(慧眼)도 바로 이 예민한 지점을 파고든 게 분명하다. 정치라고 스포츠와 뭐가 다를까. 여야가 제대로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대화도 하고 타협을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4년 내내 유권자의 눈치를 살피고, 국민을 받들지 모른다. 명승부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게임이다. 패배한 쪽도 결코 패자가 아니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리고 그 시합은 전설의 ‘퍼펙트 게임’으로 남는다. 비록 내일 총선이 무승부가 아니라도 ‘퍼펙트 총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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