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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대사 리더십 인터뷰 ② 한스 울리히 자이트 독일대사

한스 울리히 자이트 주한 독일대사는 “외교관이 되려면 관심이 있는 국가의 법학·경제학·역사·정치에 대한 정보를 평소에 관심을 갖고 읽으라”고 조언했다. 왼쪽부터 김지수양·자이트 대사·임주원양·김동민군.




“관심 있는 지역 정해 정치·경제·문화 기사 매일 읽으세요”

“독일어 하는 사람 있나요?”“ 야, 이히 슈프레혜 도이치(Ja,ich spreche Deutsch·네, 저 독일어 할 줄 압니다.)”

주한 독일대사 한스 울리히 자이트(60)가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하자, 김지수(한영외고3)양이 능숙한 독일어로 대답했다. 자이트 대사는 김양에게 “나보다 독일어를 잘한다. 난 독일 사투리를 쓰는데”라고 말한 뒤 활짝 웃었다.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독일대사관에서 김동민(대원외고3)군과 임주원(서울 국제고3)·김지수양이 자이트 대사와 만남을 갖고, 글로벌 인재로 자라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고교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국제적 인재가 되기 위해 고교시절 어떤 역량을 길러야 할까요. (김양)



 “전 좋은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과목만 골라서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지요. 언어관련 과목과 역사, 지리를 좋아했어요. 특히 국가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요. 저도 그랬고, 독일 청소년들은 스포츠클럽이나 보이스카우트 같은 단체에 적극 참여해 리더로서의 자질을 길러요. 14~18살이 되면 미래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법학·정치학·역사학을 전공하셨는데요. 이 점이 외교관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임양)



 “전 고고학·고대 언어·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서도 이들 학문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런 학문을 전공해선 먹고 살기 어렵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법학을 전공하고, 다른 과목들은 복수 전공 했어요. 이들 학문은 연구 방법이나 접근 방식이 각기 다르지만 외교관으로서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되었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주제를 이야기 하니까요. 외교관이 되기 위해선 법학·경제학·역사·정치에 두루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을 추천해요.”



-저는 외교관이 꿈입니다. 청소년이 국제 현안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김군)



 “다음 세가지 방법이 가능하겠지요. 국제기구 등에서 개발도상국을 도와주는 인도주의적 프로젝트들에 참여하세요. 또 자신이 관심 있는 나라나 지역을 정해서 그와 관련된 정치·경제·문화 기사들을 매일 읽으세요. 대학생이 된 뒤에는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여러분같이 독일어에 능숙한 학생이라면 독일에서 공부하는 것도 좋겠지요.”



-학창시절 때부터 지금과 같은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김군)



 “전혀 생각 못했어요. 독일은 1960~7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이어서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어요. 공무원은 딱딱하고 고리타분하게 생각되었지요. 게다가 전 원래 해외의 상공회의소에서 근무하고 싶을 만큼 경제 분야 직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랬던 제가 외교관이 되겠다고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 졸업 후 프랑스 파리의 국립행정학교에서 공부하면서였어요. 그곳에서 국제관계에선 경제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정치적 측면 즉 정부의 정책과 의사결정이란 것을 깨달았지요. 그때 외교관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전 외교관을 택할거에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문화적 차이 등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김양)



 “미국·러시아·케냐·벨기에·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했어요. 그 나라의 생활과 문화를 ‘선입견’없이 보려고 했어요. 나라와 사람 사이에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지요.”



-2006~2008년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사로 활동하셨는데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임양)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란 걸 깨닫게 되는 경험을 했어요. 여학교 재건 사업을 펼쳤는데 제 두 딸아이의 개교식에 참석했을 때 느꼈던 설렘이 다시 떠올랐지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위험하고 어려운 곳이기도 했어요. 제가 외교관으로 있을때 폭탄이 터져 몇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고, 인질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독일군 한 명과 한국군 세 명이 숨지는 일도 있었어요.”



-대사님이 어린 시절, 부모님은 어떤 가르침을 주셨나요. (김양)



 “부모님은 제게 살면서 이 세가지를 꼭 가슴에 품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첫째, 무조건 열심히 살아라. 둘째, 어떤 역경이 닥쳐도 이겨내라. 셋째, 직업을 선택할 때는 무엇보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택하라.’ 그리고, ‘노력이 없으면 성과도 없다’는 독일의 속담을 자주 인용하셨지요.”



-대사님만의 자녀교육법은 무엇인가요. (임양)



 “두 딸과 아들 한 명 모두 20살이 넘었어요. 학생도 있고 사회인도 있지요. 그런데 아직 자기 소유의 차가 없어요. 부모가 차를 사주는건 생각조차 안 해 봤지요. 자기들이 직접 돈을 벌어서 사야 하는데 자녀들 스스로 그것도 아직은 사치라고 생각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어요. 독일 사람들은 근검 절약을 강조하지요. 독일은 벤츠 포르쉐 같은 세계적인 차들을 만드는 곳이지만 정작 독일인들은 차를 사도 가장 작은 차를 선택하곤 해요.”



-한국인이 세계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 어떤 점을 계발하면 좋을까요. (임양)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성공했지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있고, 독일 함부르크 있는 해양법재판소에 한국인 판사가 있어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 한국 음악가들이 많지요. 세계무대에서 일하기 위해선 젊은 시절 한번쯤은 외국생활을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세계에서 한국인의 이미지는 근면함과 친절함이에요. 1960년대 독일이 사회적으로 혼란할 때, 한국인 간호사와 광부들이 도움을 줬어요. 때문에 독일에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아있어요.”

 

-독일과 한국 교육환경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김군)



 “한국과 독일 모두 지하 자원이 풍부하지 않아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지요.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독일과 달리 학원을 많이 다니는 거 같아요. 책을 통한 원리적인 공부가 맞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진짜 적성을 찾는 직업 교육이 더 유용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한스 울리히 자이트 대사=모스크바·나이로비·나토 상설대표부·워싱턴·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근무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고, 프랑스 파리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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