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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춘래불사춘

이덕일
역사평론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고 추운 것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하는데 뜻밖에도 중국의 4대 미인 왕소군(王昭君)과 관련 있는 말이다. 왕소군은 한(漢)나라 원제(元帝) 때의 양가(良家) 출신 궁녀다. 한나라는 북방 강국 흉노(匈奴)와 화친하는 것이 절대 과제였다. 그래서 원제는 서기 전 33년 흉노의 호한사(呼韓邪) 선우(單于:황제)에게 여인을 주어 화친을 맺는데 그가 바로 왕소군이다.

 원제는 그림을 보고 여인을 선택했는데 화공(畵工) 모연수(毛延壽)는 왕소군이 뇌물을 주지 않자 못나게 그려 주었다. 원제는 왕소군이 절세미녀인 것을 알자 선우에게 준 것을 후회하면서 화공 모연수를 죽였다는 일화까지 전한다.

 후한 때의 문신 동방규가 ‘왕소군의 원한(昭君怨)’이란 시에서 “오랑캐 땅에는 화초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은 아니리/ 저절로 허리띠 느슨해졌지/ 허리 날씬하게 하려던 것 아니라네(胡地無花草/春來不似春/自然衣帶緩/非是爲腰身)”라고 왕소군의 심정을 대신 노래한 것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유래다. 그래서 춘래불사춘은 원래 봄이 와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향수(鄕愁)를 뜻한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포로로 끌려가 일본에서 3년 동안 억류되었던 정희득(鄭希得)이 남긴 『해상록(海上錄)』에도 같은 시구가 등장한다. 정희득은 원래 자신의 억류 기록을 만 번의 죽음을 무릅썼다는 뜻에서 『만사록(萬死錄)』이라고 지었는데, 그의 후손이 『해상록』으로 고쳤다. 그가 일본 억류 중에 쓴 시 중에서 “고향은 천 리 밖이니 서쪽 하늘 바라봐도/ 꽃 지고 꽃피는지 묘연하구나(故鄕千里向西天/花落花開又?然)”라고 고향의 봄을 그리워한 구절이 있다.

 그는 “옛 정원의 춘색은 관리하는 사람 없으리니/ 봄은 바로 왔건만 봄 같지 않네(故園春色無人管/直到春來不似春)”라고 노래했다. 정희득은 “돌아가고픈 마음 모두 읊어도 시는 만들어지지 않는데/ 초경이 지나고 삼경이 되었네/ 가련하구나 창 밖 구름에 걸린 달/ 오히려 쓸쓸한 등불처럼 나그네 마음 비추네(吟罷歸心句不成/一更更盡到三更/可憐窓外雲頭月/猶當寒燈照客情)”라고 거듭 향수를 노래했다.

 원(元)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해 국사원 편수관(國史院編修官) 같은 관직을 역임했던 목은(牧隱) 이색(李穡)도 ‘남신점(南新店)에서’란 시에서 “인정은 봄 산 빛과 같지 않은데/ 나그네 꿈꾸는데 밤비 소리에 놀라 깨네(人情不似春山色/客夢偏驚夜雨聲)”라고 노래했다. 인정은 봄처럼 따뜻해야 하는데 타향의 인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상이변으로 봄이 아닌 봄이 몇 년째인가. 인정은 이미 삭막해졌으니 어디 간들 따뜻한 봄이 있으련만.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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