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다산이 꿈꾼 정치는 빈부격차 조정하는 정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 176주기 묘제가 7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 남양주시 실학박물관 옆 다산 묘역에서 봉행됐다. 올해가 다산 탄생 250년이기에 더욱 많은 관심을 모았다.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사진 맨 왼쪽 한복입은 이)와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이 공동주최했다. 박 이사장은 “좋은 정치를 희구했던 다산 정신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양주=김현동 기자]


정약용
조선 후기 최고 지식인이었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공자 왈 맹자 왈’을 넘어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다산의 학문이 오늘날에도 빛나는 이유다.

탄생 250년, 별세 176주기
다산 정약용 묘제·헌다의례



 7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실학박물관 옆 다산 묘역. 다산의 176주기 묘제(墓祭) 및 헌다(獻茶·차를 올리는 행사) 의례가 봉행됐다.



 올해는 다산 탄생 250년이라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유네스코에서도 다산을 ‘2012 세계문화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와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이 행사를 공동주최했고, 중앙일보가 후원했다.



 묘제는 전통 예법에 따라 40여분간 진행됐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첫 잔을 올리는 초헌관을, 다산의 7대 종손 정호영씨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을 맡았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종헌관으로 마지막 셋째 잔을 올렸고,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축문을 읽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자리였다.



 박석무 이사장은 “다산은 늘 좋은 정치를 희구했는데,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보살펴주는 정치, 빈부격차를 조정하는 정치가 다산이 꿈꿨던 좋은 정치였다”며 “제도개혁을 설파한 『경세유표』와 지도자의 자세를 강조한 『목심심서』 등을 통해 다산 정신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산은 실학을 집대성한 개혁 사상가였다. 그의 일생은 정조 임금이 서거한 1800년 이전과 이후로 양분된다.



 자신을 총애한 정조 사후 그는 정치적 탄압을 받아 18년 동안 유배 당한다. 그 시기,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완수해냈다는 점에서 유배생활은 그에게 ‘행복한 독서’의 시기였다. 그의 탄생 250돌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올 한 해 계속된다. <표 참조>





 도올 김용옥은 이날 특강에서 ‘독서인 다산’의 의미를 되새겼다. 도올은 『맹자』에 나오는 “독서상우(讀書尙友)”라는 글귀를 부각시켰다. 도올은 “‘독서상우’란 천하에 벗삼을 이가 없을 때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성현이 남긴 책을 벗삼는다는 의미인데,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다산의 일생은 결국 ‘독서상우’의 결집체로 볼 만하다”고 말했다.



 도올은 ‘과학자 다산’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다산은 당대의 학문 수준으로 말하면 전 세계의 톱(Top)에 도달한 분이었다. 다산의 저작을 섭렵해보면 대단히 수학적인 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메이지유신에 앞서 일본이 뛰어난 인재들을 유럽에 유학시켰듯이 다산도 만약 당시 유럽에 유학하며 과학의 위대한 유산을 그의 머리에 심었다면 뉴튼을 뛰어넘는 과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업 관장은 “실학박물관 개관 이래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긴 처음”이라며 “다산 탄생 250년을 기념해 준비 중인 다른 행사들도 모두 잘 치를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특강 이후 점심 시간엔 주최 측이 준비한 도시락 500개가 모자랄 정도였다.



 홍석현 회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10여 년간 이런 저런 인연과 독서를 통해 다산의 학덕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염원한 다산의 정신을 21세기를 사는 후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살려내는 작업이 그 분의 뜻을 받드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초헌관(初獻官)=전통 제사 의례에서 술을 세 번 부어 신위(神位)에 올리는 것을 ‘삼헌(三獻)’이라고 했다. 첫 술잔을 올리는 관원을 초헌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이를 아헌관(亞獻官), 마지막 잔을 올리는 이는 종헌관(終獻官)이라 불렀다. 그들의 이름 등 제례 진행 순서를 적어서 낭독한 기록은 ‘홀기(笏記)’라고 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