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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한 번도 안 간 군부대 20회 방문, 불안감 때문?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김정은 100일’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행보는 군 현지지도다. 이 기간 노동신문에 보도된 김정은의 군 행보는 20회다. 해군 2회, 공군 3회, 육·해·공 합동타격훈련장 1회, 육군을 포함한 나머지 14회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 전 100일간 했던 군 지도가 10회이고 1994년 김일성 사망 100일 동안엔 한 번도 지도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3월 10일자 신문엔 해군 제123군부대를 방문한 김정은의 손을 부여잡고 울먹이는 병사들의 모습도 보인다.

김정은의 현지지도 동선은 초기 ‘개별 부대 방문’에서 점차 ‘대남 강경 걸음’으로 옮아간다. 2월 26일자 노동신문 1면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주역인 4군단을 현지지도하는 장면과 함께 ‘민족반역의 무리들과 내외 호전광들을 매장해 버리기 위한 거족적인 성전에 진입할 것이다’라는 국방위원회 대변인 명의의 대남 비난(3면)이 나온다.

이틀 뒤 2월 28일에는 한·미 키 리졸브 훈련을 비판하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 3월 3일엔 한국군 한 부대의 내무반에서 김정일·인공기를 표적으로 만든 데 대해 “우리 자존심을 건드린 사람은 하늘의 숨 쉴 곳 없다”는 인민군 최고 사령부의 비난 성명이 나온다.

이날 뒤부터 대남 강경 입장이 대대적으로 드러난다. 노동신문 기사를 기준으로 평양시군민대회(3월 4일자), 대남 비방 사설(3월 6일자), 자강도·나선시 군민대회(3월 8일자), 황해남도·함경북도·남포시 군민대회(3월 9일자), 조평통 대변인의 대남 비난(3월 10일), 황해북도·양강도 군민대회(3월 11일), 순천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당위원회 교양 산업(3월 12일)이 이어진다. 3월 17일엔 1면 톱으로 광명성 3호 발사계획이 발표되고 3월 22일 광명성 발사와 관련, ‘우리에 대한 그 어떤 도발도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란 보도가 나온다. 이어 4월 4일 김정은이 동해 여도 방어대를 현지지도한다. 대남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국립외교원 윤덕민 안보통일연구부장 겸 교수는 “김정은이 체제를 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게 군 장악이며 이를 위해서도 대내 결속을 다지려면 대남 비방이 필수”라며 “이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김정일이 자기 체제 완성에 4년이 걸린 만큼 김정은도 향후 2~3년 비슷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 분야에서의 특이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정은의 민생 현지지도는 100일 동안 2회였다. 사망 직전 김정일의 민생지도는 100일간 23회였다. 한 전문가는 “김정은의 공식 직책이 총사령관이어서 군에 집중했고 최영림 총리가 현지 요해라는 형식으로 지도해 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2011년 11~12월 14개 경제 관련 법령을 재·개정했다. 조문을 구체화하고 투자 규제는 완화했다고 북한인권연구센터 이규창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투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원스톱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이달까지 중국 베이징에 40여 명의 관리를 장기 파견하며 투자 희망 외국 기업을 상대로 계약을 일괄처리할 계획이다. 특히 유럽연합(EU)에서 김정은이 스위스 베른 학창 시절에 사귄 인맥을 활용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생명 경제연구원 고수석 연구위원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체제 결속을 위해 광명성 3호 발사 등 외부 세계에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만, ‘강성대국 대문 열기’ 등 경제 발전을 위한 외자유치 정책은 과감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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