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거리 메운 600여 학생·주민 “만세!” 그 날의 함성 들리는 듯

4일 아산시 선장면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난 1919년 4월 4일 주민 약 200여 명이 선장장터에서 시위를 벌이고 헌병주재소를 습격한 독립운동 사건을 재현한 것이다. 올해로 3회째인 ‘4·4 아산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조명해본다.



4·4 아산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조영민 기자 , 사진=조영회 기자



4일 아산시 선장면 장터에서는 선도중학교 학생들과 연극 전문배우가 4·4아산독립운동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렸다.


선장 장터서 퍼포먼스 후 2㎞ 거리 행진



오전 11시 선장장터를 중심으로 집집마다 태극기가 게양돼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장터에 마련된 야외특설무대에서는 한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일본군 순사 복장을 한 20여 명의 남성들이 총구를 겨눴다.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치면 총을 쏘겠다. 더러운 조센징.” 일본 순사의 고함과 동시에 총소리가 울렸다. ‘탕! 탕!’ 만세를 부르던 여인네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한편의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는 선도중학교 학생들과 희극배우들이 4·4 아산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학생·주민·기관·단체 등 6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펼쳐졌으며 풍물단을 앞세워 태극기를 휘날리고 함께 만세를 부르면서 선장 장터부터 독립만세운동기념탑까지 약 2㎞의 거리행진도 펼치며 4월 4일에 의미를 되새겼다.



잊혀진 운동 의미 살려 2009년 첫 재현



아산시 선장면에서 거주하고 있는 정해곤(55)씨에게 4월 4일은 남다른 의미다. 4월 4일 선장면 독립만세운동을 그의 조부모인 고 정수길선생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정수길 선생이 1979년 타계 할 때까지 이곳에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의암 손병희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고향인 이곳 선장에서 후학을 지도하셨습니다. 민족주권 회복을 위해 지역에서 힘쓰셨던거죠. 전국이 독립만세운동으로 타오르자 선장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셨어요.”



 실제로 고 정수길 선생의 육필 원고에는 자신이 직접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펼친 사건이 기재돼 있다. 천도교 3세 교주 손병희 선생의 지도하에 권동진, 오세창 최린 선생 등이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한 후 민족대표 33인을 모으는 과정도 기록돼 있다.



 “지역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대한 기록이 없어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이 원고를 가보처럼 여기고 있죠. 4월 4일 독립만세운동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동참했기에 주민들 모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씨는 아산시민들이 선장면 독립운동을 잊고 사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4월 4일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1990년대 초반부터 재현행사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4월 4일을 기념해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주변 유공자들과 함께 아산시에 건의를 한 적이 있어요. 뜻대로 되진 않았죠. 예산 부족의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4·4운동이 잊혀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정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1997년 10월 선장면 지역발전협의회를 발족하고 주민모금과 보훈처 등을 통해 예산을 마련한 뒤 마을에 독립만세운동기념탑을 건립했다. 또한 계속 추진해오던 만세운동 재현행사도 시·온양문화원과 협력해 2009년부터 시작하게 됐다.



 “올해로 3회째(지난해는 구제역 등의 이유로 취소)가 되는 행사입니다. 이제는 아산시에서도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시민들도 4월 4일에 대한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장면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홍보돼 우리 선조들의 나라사랑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