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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교과서

이덕일
역사평론가
선비들의 교육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학(字學)으로서 글자를 가르치는 것. 다른 하나는 마음가짐과 행실, 즉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같은 교과서로 가르쳤다. 어려서 자학(字學)을 배우는 교과서가 『천자문(千字文)』과 『유합(類合)』이다. 천자문도 천 자의 한자를 무의미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사서삼경을 비롯해 동양 고전이 농축된 고전 입문서다(이윤숙,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역해(譯解)』). 유합(類合)은 조선 초기 서거정(徐居正)이 지었다고 알려졌지만, 이규경(李圭景)이 ‘소학의 고금(古今) 이학(二學)에 관한 변증설’에서 “누구 손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망설였듯이 확실치는 않다. 조선 중기 문신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이 『유합』을 보완해 『신증류합(新增類合)』을 지었는데, 이 역시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아니라 천문(天文), 지리(地理) 등으로 분류해 천하의 이치를 깨닫게 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지었다. 그 서문에서 “지금 사람들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 모르고 어리석게도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주위의 사소한 것에서 배울 수 있게 저술했다. 『격몽요결』 제1장이 ‘뜻을 세우다(立志)’인 것처럼 글자를 배우면서 자연히 전인교육이 되게 했다. 제3장 ‘몸가짐(持身)’에서는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더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슴속에 간직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주자)가 편찬한 『소학(小學)』도 어린이용 교과서였다. 조선 후기 주자학이 유일사상이 되면서 많은 문제점을 낳았지만, 이는 후대의 일이다. 조선 전기만 해도 갑자사화 때 사형당한 사림(士林) 김굉필(金宏弼)이 스스로를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자칭하며 소학을 끼고 살았을 정도로 평생 곁에 두고 봐도 좋은 교과서였다.

 『소학』 제1권이 아름다운 말(嘉言)이고, 2권이 착한 행동(善行)이다. 요즘 상스러운 말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어릴 때 『소학』을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학』만큼 보편화되었던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이다”라는 말도 있다. 수능이 EBS교재와 연계 출제되면서 EBS교재가 교실에서 교과서를 몰아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심지어 교과서를 사용하면 벌점을 부과한다니 지식과 인격 전수의 장이 EBS 교재 강습소로 전락한 셈이다. 이러고도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는 것은 산에서 물고기를 찾는 산상구어(山上求魚)가 아닐 수 없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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