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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중국과 시나(支那)

금년이 중일(中日) 수교 40주년의 해이지만 양국관계는 불편하다. 4월의 기념행사에 당초 참석이 예정된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의 방일이 돌연 취소되었다. 얼마전 일본 나고야(名古屋)의 가와무라(河村)시장이 자매도시 난징(南京)시 대표단의 면전에서 난징학살의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발언으로 문제가 되더니 최근에는 일본의 대표적 우익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가 최근 어느 대학의 졸업식에서 중국을 “시나”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다시한번 물의를 빚고 있다.

이시하라 지사의 주장은 서양에서는 중국을 “시나”로 부르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나 “시나(支那)”는 중국에 대한 경멸의 뉴앙스를 풍기는 표기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시나”는 본래 인도 승려가 고대 인도어(산스크리스트어)로 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처음으로 쓰여졌던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티베트 동쪽의 중국을 “신(Cin)”라고 표기했다. 그것은 당시 중국을 통일한 진(秦)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신”이라는 이름은 인도상인들에 의해 페르시아(이란)로 건너갔고 이것이 그리스를 거쳐 유럽으로 전달되어 오늘날 “차이나” 또는“시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학을 시노로지(sinology)로 부르는 것도 “시나”가 중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자신들이 사는 나라는 천자(天子)의 나라이며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중화(中華)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서양의 국가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당(唐).송(宋).명(明).청(淸등은 국명이라기보다 왕조명으로 사용되었다.

신해혁명(1911)으로 청조가 무너지고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공화정이되면서 국민국가(nation state)개념의 국명인 “중화민국” (Republic of China)이 처음으로 탄생되었다. 중국사람들은 정식으로 나라이름을 “중국” 자신을 “중국인”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후 내전에서 중국대륙을 통일한 공산당정권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으로 수정하였지만 “중국”임에는 변함이 없다.

일본에는 6세기 한반도를 통해 중국의 한역불경(漢譯佛經)이 전달되어 불경속의 “시나”(支那, 至那)가 중국을 가르키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17세기이후 네들란드인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서양의 인문 지리서가 들어와 서양에서도 중국이 “시나”로 표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해혁명으로 청(淸)국이 “중화민국”(중국)으로 바뀌었지만 메이지(明治)유신이후 아시아 제일의 국가를 지향한 일본인들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의 중화민국이 마음에 들지 않아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할 때까지 군부를 중심으로 “시나”(支那)로 계속 불러 왔다. 1937년 7월 중국 화북(華北)지방에서 발발한 중일(中日)전쟁을 당시 일본에서는 “시나”(支那)사변이라고 불렀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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