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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위대한 식재료’] 항아리 뚜껑 닫아 발효…곰팡이 꽃 걷어내니 노란 된장이

대중가요 가사처럼 만남은 늘 우연이다. 합천우리식품은 집에서 띄운 맛의 청국장을 찾다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업체였다. 청국장 맛이 만족스러웠는데, 게다가 덤으로 따라온 된장도 깔끔하고 정직한 맛이었다. 사실 나는 집에서 된장을 담가 먹는지라 된장을 살 필요는 없건만 호기심이 생겨 인터넷과 생협 매장을 뒤져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장을 파는 업체가 다양하고 많다니! 몇 개의 된장을 사먹어 보니 맛이 조금씩 다 다르다. 몇 군데는 내 입맛으로 아니다 싶었지만, 또 몇 군데는 꽤나 맛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업체였다.



합천우리식품 된장·간장

지난해 이맘때 합천우리식품에서 담근 된장. 표면에 하얗게 핀 메주 곰팡이를 걷어내니 노랗게 잘 익은 된장이 나온다. 몇 해를 더 묵히면 된장의 색은 검어지지만 대신 맛과 향취는 점점 깊어진다.


 결국 재래식, 그러니까 전통식으로 된장을 담가 파는 업체들은 모두 집집마다 다른 자기네 손맛으로 담가 팔고 있었다. 그 맛이 자기 입맛에 맞는 소비자는 ‘맛있다’ 할 테고, 안 맞으면 ‘맛없다’ 할 테다. 원래 음식 맛이란 것이 그런 법이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장도 일 년 더 묵히면 맛이 또 달라진다. 특히 긴 호흡으로 발효시키는 장은 맛 차이가 크다. 그러니 어떤 맛이 가장 탁월한가를 가르기도 쉽지 않다. 입맛은 십인십색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가장 맛있는 것이 ‘울엄마표’라고 하겠는가. 장 담글 줄 아는 엄마들이 늙고 기운이 빠져 ‘울엄마표’를 더 이상 얻어다 먹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사먹게 되면서도 이런 양상이 지속되는 분야가 바로 장이다. 대기업이 진출해 나름 성공한 김치와 달리 장은 시골 곳곳에 항아리들을 늘어놓고 장을 담가 파는 소기업체들의 몫이 크다. 그 업체들은 대개 할머니 한 분의 손맛에 의존해 가족들이 운영한다. ‘울엄마표’에 길든 각기 다른 소비자들이 자기 입맛 따라 새로운 ‘울할머니표’를 사먹기 때문이다.



이윤점씨가 간장 독에 넣을 메주를 망에 넣고 있다.


 경남 합천군 어전리의 합천우리식품도 1912년생 노할머니가 살아계셨던 1995년부터 장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제 며느리인 이윤점(63)씨가 맛을 총지휘하고, 손자 박종옥(41) 대표가 경영을 맡아 운영하는 가족기업이다. 박 대표에게 이 집 장의 특별한 점을 물었더니 “머 머… 벨루 없습니다. 남들 하는 거맹키로 담그는 거지예”라며 소박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우리 집 장이 아주 맛있십니더”이다. ‘이거면 되지 않았느냐’ 하는 자신감이 미소에 묻어났다.



  공장 옥상과 뒤뜰에는 쌀 한 가마는 족히 들어갈 법한 큰 독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지금 쓰는 수백 개의 독들은, 옛날 유약을 발라 제대로 구운 최소한 70년 이상 된 것이다. 노인들만 사는 시골집을 돌아다니며 하나 둘 모아온 것이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3월 29일. 음력으론 3월 8일이었다. 어머니 이윤점씨는 며칠째 간장 담그는 일을 하고 있었다. 메주 건질 때를 생각해서 얇은 망에 메주를 넣고 소금물에 담가 놓는다. 염도가 22도이니 간은 다소 강하게 하는 편이다. 음력 3월 초에 느지막하게 장을 담그니 간이 싱거우면 상해버린다. 음력 정월 말에 담그면 ‘정월 장’이라고 하는데, 이 집은 ‘삼월 장’을 담그는 것이다. “이기 맛있다 아이가. 어차피 추울 때는 장이 빨리 안 우러나. 날이 따뜻해져야 우러나기 시작하지.” “꼭 그리 해야 한다는 기 아이라, 우리 집 방식이다.” ‘우리 집 방식’, 이게 참 무서운 말이다.



1 독에 메주와 소금물을 넣고 숯과 고추를 띄우면 간장 담그기는 끝난다. 따뜻한 3월 햇볕 덕분에 장 담근 지 사나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메주 성분이 우러나와 간장의 색이 누르스름해지기 시작했다. 2 익어가는 간장에 해가 반짝 비쳤다. 3 지난해 담근 간장. 달이지 않은 생 간장을 그대로 보관하고 판매한다.
  이 집의 방식이 또 있었다. 간장을 달이지 않는 것이다. 간장은 이렇게 장을 담그고 4~8주 뒤 메주를 건져내고 달여 놓아야 더운 여름에도 상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은 생간장 상태로 보관하고 소비자에게도 그대로 판다. “생장이 훨씬 맛있는데 머 하러 달이노.” 맞는 말이다. 생장은 달인 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향취가 있다. 결국 이 집은 장을 짜게 담가 달이지 않고 보관하고, 대신 생장의 향취를 그대로 즐기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집의 간장은 팔 때마다 색이 다르다. 원래 장은 묵을수록 색이 짙어지고 향도 깊어진다. 그런데 소비자가 왜 다르냐고 항의하면 일일이 설명해줄 수 없어 난감하다고 젊은 며느리가 하소연을 한다. 원래 발효식품이란 이런 것을, 도시의 소비자는 표준화된 것을 요구하니 난감할 수밖에 없다.



  간장을 조금 떠서 먹어 보았다. 짜긴 짜다. 그런데 뒷맛이 달착지근하고 향취가 살아 있는 것이 아주 잘된 간장이다. 장 맛이 좋으려면 메주가 좋아야 한다. 메주는 동네사람들이 조금씩 농사지은 콩을 사다 만든다. 한 해에 이 업체에서 사용하는 콩의 양이 20t이다. 메주 띄우기는 자연발효 방식을 고집한다. 메주를 만들 때 종균을 섞으면 메주가 푸른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빠르게 발효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종균에 의해 발효된 개량 메주의 획일적인 맛이 난다. 그래서 이 쉬운 방식을 포기하고 자연발효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통기가 잘되는 곳에다 볏짚 깔아놓고 서너 달 동안 충분히 말리면서 천천히 발효시킨다. 통기를 위해 자주 메주를 뒤집어주고 가끔 선풍기도 틀어주는데, 절대로 온풍기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온풍기를 써서 말리면 된장에 찰기가 떨어진다고 어머니가 질색을 하신단다.



  이렇게 자연발효된 메주를 쓰니 옛날 장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게 되는데, 단 감칠맛이 강한 것을 좋아하는 요즘 입맛을 고려해 간장 담글 때부터 종균으로 띄운 개량 메주를 조금 섞는다. 사실 이 비율이 노하우란다. 개량 메주만 쓰면 공장 제품처럼 맛이 얄팍해지고, 자연발효 메주만 쓰면 감칠맛이 줄어들고 장이 완성되는 시간도 길어지니, 할머니와 어머니가 터득한 ‘황금비율’을 고집한다.



  된장 발효도 이 집만의 노하우가 있다. 간장 담근 지 8주가 되면 메주를 건져 된장독에 옮겨 담는데, 항아리 뚜껑을 열어놓고 햇볕과 바람을 쐬지 않는다. 햇볕과 바람을 쐴 때 벌레가 들어갈 우려가 있고, 장의 색깔이 검어지기 때문이다. 따뜻한 낮에는 발효가 왕성해져 표면의 수위가 높아지고 밤에는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메주의 불순물들이 된장 표면으로 올라와 메주 균과 어우러져 하얀 골마지 같은 막이 생기고 흰곰팡이도 핀다. 사실 이럴 때 된장이 자칫 쉴 우려가 있어 나는 이런 것이 생기면 깜짝 놀라 바로 그것을 걷어내고 표면에 소금 뿌리고 햇볕을 쐬어 표면을 말린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이것을 자연스러운 발효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이래야 된장이 되는 기다. 보래이.” 확신 있는 말로 하얀 피막 밑에 있는 노란 된장을 떠서 맛을 보여준다. 와! 감칠맛과 깊은 맛이 잘 어우러진 좋은 된장 맛이다. 결국, 소금 간을 강하게 해 변질을 막으면서 왕성하게 발효시키는 게 이 집 방식의 핵심인 셈이다.



합천우리식품 박종옥 대표가 메주를 들여다보고 있다. 전통 방식 그대로 볏짚 깔고 서너 달 동안 천천히 발효시키는 자연발효를 고집한다. 깊은 장맛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집에 돌아와 얻어온 생장과 공장제 간장을 조금씩 섞고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넣어 달래간장을 만들었다. 생장의 향취에 말끔한 감칠맛의 간장, 여기에 봄 달래의 알싸한 향이 어우러져 씹힌다. 따끈한 밥에 얹어 먹으니 맛이 환상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호기심이 발동해 베란다 항아리에서 말라가는 묵은 된장을 퍼내고 햇콩 삶아 으깨고 메주가루를 섞어 새 된장을 버무렸다. 내가 하던 방식보다 훨씬 짜게 버무렸다. 하얀 메주곰팡이가 피어올라도 그냥 두어보련다. 햇볕과 공기에 그리 영향받지 않는다면, 아파트 베란다에서 가장 적합한 발효 방식이 아니겠는가. 결과는 내년에야 알 수 있다. 망치면 메줏가루와 콩 한 봉지 버린 것이고, 성공하면 내 손맛, ‘울엄마표’가 진화하는 것이다.



  한식 산업화를 하려면 식품 표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표준화와 대기업화 바람에 기죽지 않고 십인십색 ‘울엄마표’의 손맛을 유지하는 수많은 소규모 업체가 짱짱하게 버텨주고, 그 맛을 즐기며 찾아주는 깐깐한 입맛의 소비자들이 살아 있어야 우리 음식은 계속 발전할 수 있다. 실력 있는 언더그라운드들이 전체 업계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은 단지 대중음악에서만은 아닌 것이다.



글=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ymlee0216@hanmail.net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영미 1961년 서울 신설동 한옥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 개성 출신 할머니와 전북 출신 어머니의 손에서 나온 음식을 먹으며 ‘절대 미각’이 개발됐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대중문화평론가로, 음식에 대한 ‘평론’은 중간중간 취미생활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대중가요사』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 등이 그의 직업 관련 저서. 또 2006년 음식에세이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를 펴냈으며, 2010년 3월부터 1년 동안 중앙SUNDAY에 칼럼 ‘제철 밥상 차리기’를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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