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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이 오기만 기다린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오에 겐자부로에게 문학은 곧 삶이자 현실이었다. 사진은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 문학 전문기자인 사비 아옌과 사진기자 킴 만레사가 펴낸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16인의 반란자들』에 소개된 오에 겐자부로의 모습.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건, 아무래도 프로의 영역이다. 자칫 과장으로 흐를 수 있고, 심각한 자기 연민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일본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77)의 대담집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문학과지성사)는 작가에 대한 객관적 평전이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오에가 일본 유력 일간지 요미우리신문 문화부 오자키 마리코 기자와 나눈 대화록이다. 작가의 등단 50주년을 맞아 2006년 진행됐다.



오에 겐자부로 대담집
『작가 자신을 말하다』 출간

 오에는 말을 신중하게 다루는 작가다. 강연을 할 때도 모든 내용을 원고지에 옮겨 적은 뒤에 철저히 탈고하고 나서야 연단에 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대담집은 소중하다. 오에가 이례적으로 자신의 개인사와 문학적 삶을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자서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오에의 삶을 세세하게 실어 나른다. 시작은 오에의 어린 시절 풍경이다. 이를테면 오에가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깨치기 시작한 열 살 때의 기억이다. 오에는 작가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어느 날, 감나무 잎과 작은 가지가 이슬에 젖어 있는 게 보였어요. 그 이슬방울에 비친 제 모습도 있고요. 그것을 보고 지금껏 나는 제대로 보고 또 듣지 않았구나, 깨달은 겁니다. ‘세심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세심하게 세상을 주시하는 눈을 가진 인간 ‘오에 겐자부로’가 이미 열 살 즈음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세심한 눈이 오에 겐자부로 문학의 기초가 됐다. 오에는 일본 최고의 도쿄대를 나와 스물셋에 최연소로 아쿠다가와상을 받았다. 이후 작가로서 승승장구 했다. 32세에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38세에 노마문예상 수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고, 마침내 1994년 59세 나이에 소설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실 그의 노벨상 수상은 예상 외의 타이밍에 이뤄진 측면이 있다. 수상 결과가 나오기 한 달 전쯤 아사히신문에 “이제, 소설은 쓰지 않겠다”는 오에의 발언이 기사로 실렸다. 그런 시점에 불쑥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노벨상을 받던) 그 해, 나는 쉰아홉이었습니다. 예순이 되면 무엇인가 나를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조금씩 소설을 써서 연명하는 건 아무래도 나태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 시점에서 노벨상을 받았어요. 이제 소설 쓰기를 그만 두고 어딘가에서 조용히 산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어요. 아이러니한 이야기입니다만, 이걸 계기로 죽을 때까지 글을 계속 쓰면서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대담에서 오에는 “나는 소설을 쓰는 능력밖에 없는 인간으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그것이 온다”고 여기는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고 한다. 그에게 ‘그것’은 모호한 이야기가 탄력을 받아 이륙하는 순간이다. 이를테면, 뇌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개인적 체험』 같은 소설처럼.



 오에는 실천적 지식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천황제와 핵문제, 국가주의와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등 사회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치열한 문학은 현실의 급박한 사안을 도외시할 수 없음을 몸소 입증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의 50년 문학인생에 대해 “그럭저럭 게으르지 않았던 삶”이라고 자평했다. 그가 게으르지 않았기에 독자들은 문학적·지적 축복을 누리게 되지 않았을까.



오에 겐자부로의 말말말



▶“모든 예술의 근간이 되는 것은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궁극적으로 갈고 닦으면 도달점은 시의 언어, 그것도 옛날처럼 읊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한없이 산문에 가까운 정수와 같은 것, 나는 이것이 문학 언어의 최후의 형태로 재흥하리라고 봅니다.”



▶“나로서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을, 그럭저럭 게으르지 않았던 삶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50년이 지난 지금의 자기평가입니다.”



▶“문학은 그 작품의 작자인 시인이나 소설가가 지니고 있던 의식을 초월해버릴 수 있다, 이는 내가 젊었을 때부터 갖고 있던 신조입니다.”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교육적·지도자적 역할을 할 자질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단지 언어의 힌트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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