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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악마의 덫’을 피해가는 방법

권석천
논설위원
지난해 6월 우리 사회에서 부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주제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제목은 “한 번의 식사 자리가 ‘악마의 덫’이다”였다. 문제의 인물과 만남이 시작된 뒤 교제 기간을 거쳐 돈봉투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글이었다.



 그 칼럼을 쓰면서 ‘악마의 덫’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한국의 사회생활이란 것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릿한 냄새가 나기 마련이란 걸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칼럼이 나간 뒤 특수부 출신의 한 검사는 “악마의 덫을 피해가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비법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윗사람이나 선배가 부르는데 식사 자리에 불참하는 건 결례다. 다만 식사 자리에서 소개받은 사람(‘X’라고 하자)이 요주의 인물로 느껴질 경우 더 이상의 만남은 피해야 한다. X가 전화를 걸어와도 곧바로 받아선 안 된다. 옆자리에 누군가를 앉혀놓고 “OOO와 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일 수도 있다. 몇 시간이 지난 다음에 “회의 중이었다”며 응답 전화를 해야 한다. 대충 이런 얘기였다. 세상 참 복잡하게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지난주였다. 환경공단 공사 발주 비리 기사를 읽다가 눈이 크게 뜨였다. 설계 심의위원 5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입찰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는데 로비를 거절한 교수도 있었다? 인천지검 수사팀에 물어봤다. 수사 검사는 “2~3개 업체에서 ‘한 교수에게 로비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한 번의 식사 자리에서 출발해 업체의 ‘맨투맨 로비’에 무너진 교수는 모두 9명. 받은 돈은 한 사람당 1000만~7000만원씩이었다. 식당이나 승용차는 물론이고 집 앞, 연구실에서도 돈봉투가 오갔다. 교수들은 재판에 넘겨져 교수직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수소문 끝에 ‘실패한 로비’의 주인공이 50대의 지방 사립대 교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렵게 전화가 연결됐을 때 교수는 수사 상황에 관해 모르고 있었다. 그는 “거창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익명 처리를 당부했다. 다음은 그와의 통화 내용이다.



 -청탁을 거절했다는데.



 “업체들이 찾아온 건 맞아요. 10곳은 넘는 거 같습니다. 그분들 만나면 두 가지 원칙부터 얘기했어요. 첫째, 연구실 밖에서는 절대 안 만난다. 둘째, 작은 회사 기념품 말고는 안 받는다.”



 -만나주기는 한 거네요.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어요. 그분들 업무가 그런 건데 안 만나겠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주고받는 게 관행이라고 하던데요.



 “평가는 객관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마음이었죠. 더욱이 학회를 대표해 심의위원이 된 건데…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공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업체 분들에게 말씀드렸어요. ‘계획서만 볼 테니 잘 쓰시라’고.”



  멋쩍게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좀 멍한 느낌이었다. 그래, 저런 사람도 있으니까 사회가 굴러가는 것이겠지. 그러다 머리를 스친 생각은 ‘결국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입찰 비리에 얽힌 교수든, 불법 사찰에 동원된 공무원이든 멀쩡한 경력을 지닌 이들이 부정부패에 빠져드는 뿌리는 하나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이데올로기. 괜히 중뿔났다고 혼자 깨끗한 척, 올바른 척해 봤자 알아주는 이 없고 자신만 손해라는.



 하지만 전화 통화를 했던 교수처럼 ‘나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해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 분위기도 달라지지 않을까. 악마의 덫에 걸려 신세를 망치는 이들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어두컴컴하고 칙칙해 보이는 우리 사회에도 희망은 숨쉬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부터’ 바르게 살려고, 욕심을 줄이려고 애쓰는 이들이 없었다면 한국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사에 어지러운 하루, 커피향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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