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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라면과 건면

이덕일
역사평론가
라면은 한자로 랍면(拉面)이라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일본의 안도 모후쿠(安藤百福·1910~2007)가 발명했다고 본다. 일제시대 대만(臺灣)에서 출생한 안도의 원명은 오백복(吳百福)이었으나 일본으로 귀화했다.

 그의 출생지인 가의(嘉義)현 부근의 복자각(樸仔脚·현 朴子市)은 제염업과 면이 유명한 곳이다. 패전 후 신용조합을 운영하다가 파산한 안도가 자택 정원의 오두막에서 면에 대해 연구해 1958년 8월 25일 치킨라면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것을 라면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다. 라면은 순식간에 인기상품이 되었고, 그의 일청식품도 크게 성장했다. 이 덕분에 안도는 일본 즉석식품공업협회 회장과 세계 라면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그가 발명한 것은 ‘즉석 라면’이지 라면 그 자체는 아니다.

 라면의 원조는 면에서 물기를 뺀 건면(乾麵)으로 중국은 물론 조선에도 있던 식품이었다. 명(明)나라 때 진중림(陳仲琳)이 쓴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에 건면을 샀다는 기록이 나온다. 순조 32년(1832) 동지사(冬至使) 겸 사은사(謝恩使)였던 서경보(徐耕輔)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다녀온 김경선(金景善)의 사행(使行)일기인 『연원직지(燕轅直指)』에는 ‘요동(遼東)을 지나다가 취거점(聚居店)이란 곳에 들렀더니 방에 건면을 수두룩하게 쌓아 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제선(諸膳)조에는 건면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이 나온다. 시중에서 메밀, 보리, 밀가루 등을 사다 반죽해서 얇게 썰어 광주리에 담아 말려서 저장했다가 갑자기 손님을 접대할 때 간장만 넣고 끓이면 되는데 ‘면이 윤기가 나는 것이 신면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라면의 원리와 똑같다.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하던 『매일신보(每日新報)』 1942년 6월 29일자에는 경성부(京城府·서울)에서 소위 “식봉공(食奉公)을 한다고 해서 대용식일(代用食日)의 경우 점심을 쌀 대신 건면(乾麵)으로 배급하기로 방침을 결정했다”고 전하고 있다. 일제 말에도 건면이 활발하게 유통되었던 것이다.

 1948년 10월 27일자 ‘자유신문’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눈에 띈다. 기업처(企業處)에서 건면 판매가격을 결정해 고시했는데 생산자의 최고 판매가격은 관(貫)당 142원이고, 소매업자의 최고 판매가격은 146원이라는 것이다. 중간 마진이 그만큼 적었고 위배할 경우 제재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라면회사들이 무려 9년 동안이나 가격을 담합했다는 발표에 서민들이 공분하고 있다. 라면회사들의 행태에 염치가 없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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