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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스타일, 포퓰리즘 中 정치판엔 안 통한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포퓰리즘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이다 지난 15일 낙마한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는 중국 정치의 견고한 현실주의 노선이 건전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3월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1기 5차 회의에 참석한 보시라이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베이징 AP=연합뉴스]

1418년 8월 조선의 4대 왕인 세종은 임금의 자리에 오르면서 함께 반포한 교서(敎書)를 통해 그물과 그물코의 관계를 설명하는 성어를 선보였다. 그물의 줄기를 들어올리면 그물코가 잘 펴진다는 말이다. 한자로 표기하면 ‘강거목장(綱擧目張)’이다.

뿌리와 나무 끝의 가지를 뜻하는 ‘본말(本末)’, 위의 성어에서 간추린 ‘강목(綱目)’이라는 말은 사실 동의어다. 핵심적인 원칙을 충실히 지켜 큰 틀을 유지하면서 주변의 변화를 수렴하려는 현실주의적인 사고가 엿보인다.

약 2000년 전인 한(漢)나라 때 나온 말로, 조선의 세종대왕이 이를 즉위 교서에 사용한 이유는 ‘정치의 핵심적인 요소를 잘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기 위해서였다. ‘강거목장’이라는 성어를 만든 중국은 이런 사고에 매우 강한 면모를 보인다. 개혁·개방 30여 년을 이끈 중국 집권 공산당이 특히 그렇다. ‘지속적인 개혁과 개방’은 흔들림 없는 그들의 원칙이다.

중국 공산당이 지난 14일 충칭(重慶)의 권력 1인자였던 공산당 서기 보시라이(薄熙來)를 면직시킨 조치는 그와 같은 맥락이다. 서방의 많은 언론이 정치국원이자 차기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 그룹인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을 노리던 보시라이의 좌절이 권력투쟁과 관련 있다고 봤다. 그러나 시간이 다소 지난 지금은 그런 시각이 설득력을 잃고있다.

중국 공산당 최고 권력을 구성하는 국가 부주석 시진핑(習近平) 등 태자당(太子黨·혁명원로나 고관의 자제 출신)과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에 연고를 둔 파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대표하는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청년단 출신 정치인) 사이에 추가적인 다툼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시라이는 혁명원로인 부친 보이보(薄一波)의 후광으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대표적인 태자당 멤버다. 그의 낙마가 중국 최고위 권력 내부의 투쟁으로 빚어진 사건이라면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은 심각한 분위기에 젖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보시라이는 중국 정치권에서는 아주 이색적인 인물이다. 출신 성분에서 다른 태자당 멤버들과 별 차이가 없지만 매스컴을 동원한 화려한 선전술, 거침없는 언변, 서구 정치인을 능가하는 과장스러운 제스처 등의 면모가 그렇다.

그는 시쳇말로 ‘튀기 좋아하는’ 정치인이다. 다롄(大連) 시장과 랴오닝(遼寧) 성장 재직(1993~2004년), 국무원 상무부장 재직(2004~2007년) 때도 늘 그랬다. 이슈에 민감해 자주 매스컴에 오르고 화려한 언변과 큰 제스처로 이목을 끌었던 인물이다.

그렇게 튀는 행동은 그러나 올해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가 2007년 12월 서남부의 대도시 충칭의 당서기로 부임한 뒤 보인 여러 정치적 행동이 급기야 집단지도 체제의 중국 공산당 중앙이 확고하게 지키고 있는 ‘지속적인 개혁·개방’이라는 ‘뿌리(本)’와 ‘그물의 벼리(綱)’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뿌리와 그물의 벼리는 중국 공산당 중앙권력이 13억 인구의 중국을 이끌어가는 거대한 원칙이다. 보시라이는 이른바 ‘창훙(唱紅·사회주의 혁명가요 부르기)’이라는 정치적 운동까지 벌였다. 아울러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벌어진 빈부격차의 틈에 올라타 군중의 욕구에 부합하려는 선심성 정책을 펼쳤다. 민간 기업의 토지를 징수해 서민용 주택을 대량으로 지어 싼값에 공급하거나, 빈곤가정의 아동들에게 우유와 계란을 무상 공급하는 정책 등이다.

‘창훙’은 보시라이의 이념적 배경을 보여주는 운동이다. 과거 사회주의 건국과 문화혁명(1966~76년) 등 과격한 사회주의 실험기의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과거 지향적’ 정치 운동에 해당했다. 발 빠른 중국 경제성장의 그늘에 놓여 있던 서민에게 과거 지향의 이념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돌풍을 일으키자는 의도였다. 아울러 그런 정치적 업적을 쌓아 차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에 진입하는 게 보시라이의 목표였다.

그가 대중적 인기를 위해 펼친 정책의 하나가 ‘다헤이(打黑·조직폭력 소탕)’다. 그러나 그 결말은 엉뚱하게 이어졌다. ‘다헤이’ 운동에 앞장섰던 보시라이의 심복, 충칭시 전 공안국장 왕리쥔(王立軍)이 지난달 6일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공산당 중앙은 결국 보시라이를 정리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한 뒤 15일 관영 신화(新華)통신을 통해 보시라이 해임 소식을 알렸다. 낙마 뒤의 상황은 보시라이에게 더욱 불리해지고 있다. 그가 충칭시 당서기로 재임할 때 그로부터 박해를 당해 재산을 모두 빼앗겼던 기업인의 증언이 뒤를 따르고, 부인의 비리 혐의를 알린 공안국장 왕리쥔을 정치적으로 박해한 사실 등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보시라이에 대한 처분의 강도를 높이지 않았다. 일단 그의 충칭시 당서기 직을 해임하는 선이었다. 그러나 그의 낙마 뒤 보시라이에게 불리한 각종 증언이 이어지고 있어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정치적으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공산당 중앙 정치국원의 지위도 빼앗기거나, 심한 경우에는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1904~97)은 생전에 자주 이런 주문을 했다. “전족한 여인처럼 걷지 말아라(不要像小脚女人)” “발을 잘 딛고 서 있어라(站穩脚<8DDF>)” 등이다. 모두 원칙과 큰 방향을 잃지 말고 대담하게 앞을 향해 나아가라는 얘기다. 그의 주문대로 중국 공산당 중앙 지도부는 덩샤오핑 이후 중국이 가야 할 큰 방향을 잃지 않고 있다. 그 큰 방향이란 결국 ‘지속적인 개혁과 개방’이다.

덩샤오핑과 그의 사후 공산당 집단지도체제가 보이는 정치적 지향은 강력한 현실주의다. 우리는 그런 정치적 맥락의 연원을 전통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뿌리와 가지를 뜻하는 ‘본말’, 그물의 벼리와 코를 가르는 ‘강목’의 단어가 좋은 예에 해당한다.

보시라이의 낙마는 대중의 정서에 호소하면서 쉽게 제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는 타입의 정치인은 중국의 정치 풍토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권력투쟁은 그 다음이다. 파벌을 형성하면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장면도 중국적 정치문화의 한 단면이지만, 그 근간은 어디까지나 큰 방향과 대(大)전략의 유지다. 향후 중국의 정치판을 권력의 암투와 살벌한 경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보시라이 사건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점은 ‘중국 현실주의 정치노선의 안정적인 작동’이다.

유광종 기자 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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