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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미난 것,날 미치게 하는 것만 하련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결혼을 코앞에 둔 여인이 돌연 종적을 감춘다. 그녀를 찾아나선 약혼자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내 약혼자가 실은 전혀 다른 여자라니.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그녀는 나를 사랑하기는 했을까?’ 쇼킹하고도 낭만적인 질문으로 시작되는 영화 ‘화차’는 변영주(46) 감독의 영화다. 1995년 종군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바로 그 여자다. 2000년대 상업영화 감독으로 변신해 연출한 ‘밀애’(2002), ‘발레교습소’(2004) 등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리고 7년 만에 ‘화차’로 돌아왔다.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대가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이다. 9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가 꺼진 뒤 자본주의의 모순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개인의 고독을 건조하게 파고든 원작을 2012년의 한국 사회에 걸맞게 탐미적인 각도로 매만졌다. 영화는 개봉 1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서며 3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고, 감독은 TV 예능프로에 출연해 걸출한 입담을 과시하며 대중을 놀라게 하고 있다. 낮은 목소리로 사회적 메시지를 읊조리던 그녀는 어떻게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변신했을까. 대체 그녀는 누구일까.

-요즘 TV 예능 출연이 화제다. 예능이 체질로 보일 정돈데, 다큐감독 이미지를 벗기 위한 것인가.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무대 아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방송이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 ‘화차’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하기 위해 나가고, 힘들지만 발버둥치고 있다. 나는 방송을 못 봤고 앞으로도 차마 못 볼 거다. 그때의 프레셔가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친구들은 안다. 내 표정이 정말 집에 가고 싶은 표정이라는걸.”

-보이시한 여장부 스타일인데 의외다. 치마는 입어봤나.
“대학 때 많이 입었다. 더 이상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안 입게 됐고,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입을 필요도 없다.”

-영화 ‘화차’의 화제몰이에는 감독 변영주의 변신 코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상업영화를 하면서도 자신에게 영화만큼 중요한 것이 해고노동자 문제라는 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데, 본인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
“정치적 입장을 갖는 건 현실을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권리이자 의무다. 지금의 20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두 가지가 있다. 오늘 힘든 하루를 보낸 뒤 느끼는 모든 감정은 카타르시스의 대상이다. 그러려면 위안이 돼야 한다. 그들에게 두 시간 정도의 위안거리가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고, 영화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 믿는 것이 하나다. 다른 하나는 시민 변영주로서 누군가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실패했을 때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안전망을 만들어 준다면 좀 더 용기 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다. 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비정규직 해고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유도 그거다. 그런 두 가지가 동시에 있다.”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다. ‘밀애’ ‘발레교습소’ 등 전작이 있었지만 대중의 집중적 관심을 받는 것은 처음인데, ‘화차’의 성공요인은 뭘까.
“뭘까? 그건 지금 고민 중이다. 이래서 좋다, 이래서 싫다는 의견을 다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고 양쪽 의견 중 수긍이 가는 것을 고민하면 다음 작품에서는 격차를 줄일 수 있지 싶다. ‘화차’를 만들 때도 그냥 열심히 고민했다. 이 영화는 경선, 문호, 종근 누구의 시점으로도 볼 수 있다. 기본은 문호 시점이지만 다른 시점으로 봐도 뭔가를 잡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했고, 전체적으로 영화가 하나의 정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노력했었다. 자신감은 아닌데 보여드릴 때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은 마지막 믹싱할 때 들었다.”

-‘발레교습소’ 이후 7년의 공백이 40대 초반의 나이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마흔 살 즈음 누구나 성장통이 크게 온다. 잘 극복하면 신나지고 잘못 극복하면 닫힌다. 뭔가를 유지해야 된다는 생각은 닫힌 인간을 만들지만 나는 고맙게도 그때가 제일 바닥이었다. 내 주위 모든 사람이 안 되는 게 다 나 때문인 것 같을 정도로. 완전 바닥이다 보니 방어막이 엷어져 있었다. 이 바닥에서도 웃고 재밌을 때가 있으니 더 바닥을 쳐도 견딜 만하겠구나 하면서 방어막을 열었던 게 좋았던 것 같다. 조급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러지 않고 2년 동안 신나게 잉여인간처럼 놀았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임만 한 적도 있다. 책 살 돈, 영화 볼 돈, 음악 들을 돈만 있으면 됐다. 그렇게 2년 반쯤 지나니 이제는 그동안 읽었던 척 팔라닉이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장르문학의 형식을 가져와서 세상을 얘기하고 싶어졌다. 결국 힘들 때 잡아줬던 건 문학이다. 게임조차 문학적인 콘텐트가 풍부한 게임을 했는데 레벨업이 되는 것보다 재미있었던 건 퀘스트라고 하는 스토리를 풀어가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결국은 이야기구나, 그 이야기를 더 속삭이듯 만들어 내는 게 영화라는 것을 깨닫게 된 시기였다.”


-최근 ‘하울링’도 그렇고 일본 소설의 영화화가 활발하다. 영화감독 입장에서 콘텐트로서 일본 소설의 매력은 뭔가.
“장르를 넘나드는 측면이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김탁환 작가를 좋아하는데, 장르 형식을 가져와서 재밌는 얘기를 하는데도 밑바닥에는 굉장히 묵직한 것이 깔려 있다. 일본 문학이 90년대 이후 그런 것이 많아져서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김탁환 같은 작가가 늘어나면 훨씬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 ‘노서아가비’를 비롯해 그의 모든 작품이 영화화되는 이유는 정말 재미나게 장르적 이야기를 푸는데, 거기 빠지다 보면 어떤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본 소설이 매력적인 것도 장르를 과감하게 가져와서 관객에게 잘 속삭일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고 세상을 풀어내는 방식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을 택한 이유는.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소소하게 시작하고 일상의 이면을 보여주는 요소가 있다. 예컨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서브플롯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인이 훨씬 크지만 그 상상은 내가 방바닥 긁으면서 만들어 내면 되고, 중요한 건 모든 걸 다 버리고도 가져가고 싶은 메인플롯이다. 한 여자가 세상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자기와 비슷한 여자를 잡아먹었다가 완전히 밖으로 쫓겨난다는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미야베 작품에는 애초에 반전이 없다. 처음부터 다 드러내고 이유를 찾아가는 거다. ‘왜 그랬을까’ 더듬어 가는 것. 그래서 영화로 만들기가 훨씬 재미있다. 반전은 위험한 함정이다. 한국 사람들은 반전을 중요시하는데, 모두에게 비밀서약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엔딩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다. 본인도 감정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했는데, 원작의 열린 결말을 버린 이유는.
“원작과 시작을 달리했기 때문에 엔딩도 절대 따를 수 없다. 형사의 시점이라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데서 끝나도 완결성이 있지만 약혼자의 시점에서는 다른 문제다. 애초에 주인공을 바꾸던 그날 엔딩을 가져갈 수 없게 된 거다. 원작 엔딩을 선호한다면 그 뒤에 느껴지는 수많은 상상 때문이지만, 그 상상은 물질화될 수 없는 상상이지 않나.”


-우리는 보다 화끈한 엔딩을 원하기 때문인가.
“‘화차’라는 원작은 버블경제 직후의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하는 긴장감이 중요한 소설이다. 원작이 나왔을 당시에는 정말로 개인파산, 카드채무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몰랐고, 개인의 무능 때문이라 생각하고 죄스러워했다. 거기서 제3자인 형사가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때문이 아니라 세상 때문이에요’라고 말해주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추적해 왔고 만났으니 얘기를 들어보자고 차분히 끝날 수 있지만 지금은 2012년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훨씬 더 체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작의 주인공 형사 비중을 줄이고 여인의 불행한 삶을 부각시킨 것은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염두에 둔 건가, 아니면 사랑 이야기로 풀기 위한 건가?
“둘 다 해석의 방식일 뿐 우리는 해석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단지 그녀에게 목소리를 주고자 한 거다.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서 숨쉬는 그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그녀를 관객에게 가까이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정치적이라 보고, 어떤 이는 원작보다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둘 다 맞다. 영화는 펼쳐져 있고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감독의 작가주의란 것도 있지 않나?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면 안 된다. 밥 포시라는 미국의 유명 연출가가 한 말이다. 작품을 찍을 때 표면의 주제와 내면의 주제가 있는데, 보여주자마자 모든 관객이 내면의 주제를 알아차려버렸을 때 그 작품은 실패라는 거다. 표면의 주제를 보고 즐기고 난 뒤 그 다음 날 뭔가 찜찜함을 느낀다면 그것이 최고 작품이라는 말에 100% 동의한다. 내가 내 의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독립영화를 할 것이다. 관객들이 지지하는 마음으로 보니까. 상업영화는 아무도 지지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는다. 대중영화란 마치 전단처럼 사람들 손에 쥐여줬을 때 누구는 대충 보고 누구는 관심 있게 보지만, 모든 사람에게 손톱만큼의 위안이라도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90년대 초의 소설이 20년 후 다른 나라에서 힘을 잃지 않고 영화화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것 같다. 세월이 지나도, 국경을 넘어도 퇴색하지 않는 좋은 이야기란 뭘까.
“당대적인 것이다. 92년도에 만들어졌다면 정말 그 당시를 예리하게 표현했는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박완서 선생님의 ‘휘청거리는 오후’라는 소설은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분화되는 70년대라는 시점, 서울에서 재건축·복부인이 나오고 드디어 20대 여성이 결혼 전 성관계를 갖기 시작하던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금 봐도 정말 날카롭다. 당대의 기운을 명백하게 읽고 있는 점에 감탄한다. 그런 소설들이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느낌을 준다. 언젠가 ‘휘청거리는 오후’는 꼭 영상화하고 싶다.”

-김민희의 연기와 이미지 변신이 찬사를 받고 있다. 감독으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미스터리한 역할이 어려운 연기는 아니다. 본인도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다만 그녀가 이 영화를 확장시키는 파워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관객이 훨씬 더 크게 봐주고 있는 건 김민희가 보여주는 파워다. 거기에는 한국 관객들이 뭔가를 성취해 내는 여배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배경이 있다. 그동안 한계를 넘거나 폭발하는 남자배우가 한국 영화의 중심이었기에, 김민희를 보면서 느끼는 여배우에 대한 충족감이 이 영화의 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방어막이 없다는 거다. ‘왜?’를 묻지 않고 가자는 대로 그냥 막 가버린다. 기존의 이미지가 어떨지 몰라도 의외로 논리적이고 말도 굉장히 잘한다. 내 경우는 겉치레 말을 많이 하고 머리에서 말을 정리하고 뱉지만 그녀는 심장에서 말이 바로 나간다. 배우는 그런 게 좋은 것 같다.”

-다큐영화 작업도 계속할 건가.
“아니다. 지금은 상업영화가 제일 재미있다. 전부 다 할 순 없으니 제일 재미있는 것, 나를 미치게 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명진 포토그래퍼, 영화제작소 보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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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