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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대제 제물로 올린 절개의 상징


봄은 결혼의 계절이다. 지금은 결혼식장에서 혼례를 치르니 간단하지만, 조선시대에 일반 서민들은 조선 왕조에서 규범화하고자 했던 친영(親迎·신랑이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리고 와서 치르는 혼례)식으로 치르지 않고 그동안 해왔던 관행대로 신부집에서 초례상을 받았다. 혼례를 마치고 신부집에서 이틀 밤을 잔 신랑과 신부는 신랑집으로 가 다시 큰상을 받는 실로 거창한 행사였다.

혼례 날 신부집 문 앞에는 송(松)과 죽(竹)을 세웠다. 대나무는 축수(祝壽), 소나무는 장생수(長生樹)로서 건강하고 견고한 지조와 장수의 상징이다.
대나무는 위로 똑바로 뻗어올라 그 생장 속도가 빠르며 순(筍)을 내어 성장해 대나무숲을 만든다. 이것만으로도 길상(吉祥) 식물이다. 덕분에 세한삼우(歲寒三友·겨울철 관상용 세 가지 나무)인 ‘송죽매(松竹梅)’가 생겨나 시제(詩題)나 동양화의 화제(畵題)가 돼왔다.

대나무가 시와 그림에서, 또 혼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듯 대나무의 어린 싹인 죽순(竹筍) 또한 길상 음식으로서 상징적 재료가 됐다. 대(竹)의 지하줄기가 땅속을 뚫고 들어가 그 마디 부분에 싹이 나고 일부의 싹이 땅 위로 올라와 줄기가 되며, 그때 올라온 어린 싹을 죽순이라 부르고 먹는 것이다.

죽순은 어떤 대나무의 것도 다 먹을 수 있지만 현재 식용 죽순을 생산하는 것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섬대이고 다른 하나는 맹종죽(孟宗竹)이다. 섬대는 울릉도와 사할린에 분포한다. 맹종죽은 중국 강남지방이 원산으로 일본과 전라도에 분포한다. 섬대 죽순은 맹종죽 죽순보다 훨씬 작지만 맛이 좋아 고급 산채로 식용돼 예부터 진중되었다. 하지만 울릉도라는 지역적 조건 때문에 일반인들은 좀처럼 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맹종죽 죽순은 크기도 크고 육질이 두꺼우면서 부드러워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돋는 시기도 빨라 널리 사랑받고 있다.

강남죽(江南竹) 또는 죽순대라고도 불리는 맹종죽이 맹종으로 이름이 붙여진 유래는 이렇다. 중국 삼국시대 때 오(吳)나라 사람인 맹종이 한겨울에 어머니가 죽순이 먹고 싶다고 하자 대나무숲으로 들어가 어머니가 즐기는 죽순을 찾던 중 그것이 없음을 애탄하자 홀연히 눈 속에서 죽순이 나왔다 한다. 효행(孝行)의 덕(德)에 의해 죽순을 얻었다고 하는 고사(故事)가 되어 이로부터 겨울에 돋는 종을 맹종죽이라 부르게 됐다. 18세기 중국 강남에서 류큐(琉球·오키나와)를 경유해 일본에 전해진 맹종죽은 다시 전라도로 수입돼 인가(人家) 부근에 심어져 재배되기 시작했다.

2월께부터 나오기 시작해 5월 중순까지 딸 수 있는 죽순은 조선왕조에서 생죽순과 죽순해(소금에 절인 죽순)로 분류했다. 생죽순은 경상도의 곤양·단양·밀양·삼가·의령·함안, 전라도의 곡성·광주·능주·동복·순창·창평·화순에, 죽순해는 경상도의 영산·진주·창녕·청도·현풍, 전라도의 구례·담양·목과·장성에 진공(進貢)의 형태로 백성들에게 부과했다(『여지도서(輿地圖書)』, 1757).

생죽순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죽순해를 포함시킨 까닭은, 채취한 후 시간이 지나면 맛이 떨어져 가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생죽순은 생선 진공 때와 같은 방법으로 신속하게 한성에 도달할 수 있도록 파발마를 이용했을 것이다. 죽순해는 허균(1569~1618)이 지은 『도문대작』에서도 “호남의 노령(장성) 이남에서 잘 담그고 맛이 좋다”고 했으므로 경상도산보다 전라도산의 죽순이 각광받았음을 알 수 있다.

죽순해는 순저(筍菹·죽순김치)라는 명칭으로 조선왕조 내내 종묘대제 같은 국가적인 공식 제향에서 제물로 올렸다. 제물로 올리고 남은 것은 물에 우려 짠맛을 뺀 다음 생죽순과 함께 죽순찜·죽순채·죽순탕 등의 재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죽순찜은 죽순을 얇게 저며 물에 담갔다가 양념해 곱게 다진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어 중탕해서 찐 것이다. 죽순을 데쳐내 껍질을 벗기고 3cm 정도의 길이로 썰어서 곱게 다진 쇠고기에 참기름과 진간장으로 양념해 함께 볶은 것이 죽순채, 물에 삶아낸 죽순을 잘게 썰어 달걀에 버무려 끓인 맑은 장국이 죽순탕이다.

한편 생죽순은 댓잎에 싸서 잿불(熱灰)에 묻어 구워서 먹거나 죽순정과(竹筍正果)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죽순을 널리 먹은 배경에는 장수와 절개라는 대나무의 상징성도 어느 정도는 반영됐을 것이다. 기타 영양소는 다른 야채와 비슷하면서도 단백질과 당질 그리고 식물성 섬유질이 풍부한 죽순은 확실히 양질의 식자재감이다.

그런데 요즘의 식탁에는 죽순이 여간해선 잘 올라오지 않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가 선조들이 추구했던 바르게 살고자 하는 군자지도(君子之道)적 삶과는 동떨어진 금전 만능 세상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먹는 식자재감 하나에서도 삶의 철학을 추구했던 자세는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만 대는 우리 현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 돼버린 지 오래다.



죽순정과
죽순을 껍질째 70% 정도로 익게끔 물에 삶아 껍질을 벗겨낸다. 이를 잘게 썰어 꿀에 잠기게끔 담갔다가 건져내 죽순 양의 50% 정도의 꿀을 넣고 졸여 만든다.

김상보 대전보건대 전통조리과 교수 사진 수학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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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