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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통 때문에…아군끼리 총질로 1만명 사상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1788년 9월 카란세베스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끼리 자중지란에 빠져 싸우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희대의 살인마 아돌프 히틀러는 한쪽 고환만 있는 성적(性的)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그의 광기는 이런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에게는 대체로 ‘강한 남자 콤플렉스’가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돈 잘 버는 아내를 둔 남편들의 스트레스와 같은 것을 ‘강한 남자 콤플렉스’라고 규정한다. 이는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남성이 우월하고 높은 경제력과 지위를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라 할 수 있다. ‘강한 남자 콤플렉스’가 개인 영역에 국한될 때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국가나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에게 작용할 경우 나라의 운명과 역사의 흐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를 25년간 통치한 요제프 2세였다. 요제프 2세는 계몽주의자 볼테르의 영향을 받은 계몽주의 옹호자였다. 교육제도의 정비, 농노제의 폐지, 법 앞에서의 종교적 평등, 언론의 자유, 유대인 해방 등 통치 전반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에겐 결정적인 콤플렉스가 있었다. 일종의 ‘강한 남자 콤플렉스’였다. 그는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처럼 전쟁에서의 천재라고 하는 이름을 날리고 싶은 것이었다. 그 욕망을 채우고자 당시 평화로웠던 유럽 대륙에 전쟁의 불길을 붙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란세베스 전투는 1788년 9월 19일에 벌어졌다. 이 전투는 술 한 통 때문에 어이없이 패배한 전투로 역사에 남아있다. 이 전투가 있기 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어느 날 갑자기 요제프 2세는 비잔틴 제국의 멸망 이후 투르크 왕조의 지배를 받고 있던 발칸 제국을 구원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 소식을 들은 주변국들은 황당했다. 이미 오래전에 멸망한 고대의 나라를 구원하겠다니! 그동안 겨우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유럽 각국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프로이센의 빌헬름 프리드리히가 극구 만류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는 곧 스웨덴과 군사조약을 맺은 다음 발칸 제국으로 군대를 이동시켰다. 6개 군단, 24만여 명의 보병과 3만7000여 명의 기병을 갖춘 막강한 군세였다. 이때 오스트리아 군대 역사상 가장 무능한 지휘관들이 각 부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중 쓸 만한 지휘관으로 라우돈 원수가 있었지만 너무 나이가 많았기에 후방으로 빼버렸다. 그리고 최고사령관으로 ‘예스맨’인 리치를 선택했다.

리치는 먼저 1788년 5월 16일에 베오그라드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다렸던 러시아의 지원군이 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 공격 하루 전날에 공격 계획을 취소하고 말았다. 홀로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철수명령도 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때 병사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발생했다. 말라리아·이질 등으로 병사의 태반이 고통받고 있었고 무려 3만3000명의 정예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군수물자까지 떨어져 갔다.

적군 오기도 전에 아군끼리 총질로 자멸
기회를 만난 투르크군은 베오그라드에 증원군 9000여 명을 파병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군의 머리 하나당 금화 10냥을 준다는 공약을 걸었다. 위기를 만난 요제프 2세는 급히 후방에 있던 라우돈 장군을 불러들여 지휘권을 맡겼다. 라우돈은 프리드리히마저 쩔쩔매게 만든 명장이었다. 그가 7월 18일 부대를 지휘한 지 단 하루 만에 두비차 요새를 점령했지만 나머지 지휘관들의 무능으로 인해 전쟁의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결국 오스트리아군은 베오그라드를 포기해야 했다. 그때 10만 명의 투르크군이 이동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오스트리아군에게는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투르크군을 치기 위해 오스트리아군은 카란세베스 부근에 진을 쳤다.

1788년 9월 19일 달빛도 없는 밤이었다. 오스트리아 경기병의 후사르 분견대는 전위대가 돼 카란세베스에 있던 티미스 다리를 건넜다. 강 맞은편에 도착한 그들은 수색을 했지만 투르크군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왈라키안 유랑족이 쉬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기병대에게 시냅스 주(酒)와 여자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기병들은 신이 나서 말에서 내렸고 어울려 술을 퍼 마셨다.

몇 시간이 지나자 첫 번째 보병부대가 다리를 건너왔다. 그들 역시 눈이 휘둥그레져 그 자리에 끼려고 했다. 기병들은 술통 주위를 아예 요새처럼 둘러막고 보병들을 쫓아내려고 했다. 욕설이 오가고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누군가 발사한 총에 한 사람이 쓰러졌다. 잠시 당황하던 그들은 이내 서로 총을 잡고 마구 쏘기 시작했다. 자중지란(自中之亂), 같은 편끼리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 어떤 보병이 “투르크! 투르크!”라고 소리쳤다. 원래 의도는 투르크군이 몰려온다고 하면 술 취한 기병들이 놀라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엉뚱하게도 보병들까지 그 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했다. 장교들은 이 사태를 수습해 보려고 뛰어다녔다. “멈춰, 이 자식들아, 멈추란 말이야!”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이 말 때문에 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인·롬바르디아인·슬로바키아인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군대였기 때문이다. 독일어를 쓰는 장교들은 “멈춰!”라는 뜻으로 “Halt!”를 외쳤으나, 독일어를 모르는 다른 민족의 군인들에게는 그 발음이 투르크군이 신봉하는 “알라!”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투르크군이 온 것으로 착각하고 소리 나는 방향으로 마구 총을 쏴댔다. 더욱이 진영 가운데 있던 군마들이 놀라서 울타리를 넘어 오스트리아군 진영을 짓밟고 다녔다. 이것을 투르크 기병대의 야습으로 착각한 포병 지휘관은 그곳을 향해 마구 발포를 해댔다. 당시에 대포는 890여 문이 있었고 포탄은 17만6000발이 있었다. 얼마나 쏴댔는지는 모르나 엄청난 포탄이 작렬했을 것이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도 쿨쿨 잠을 자고 있던 요제프 2세는 급히 외딴 마을로 피신했다.

이틀 뒤에 투르크의 대공이 이끄는 군대가 카란세베스 마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앞에는 오스트리아 군대 1만 명의 사망자들과 부상자들이 누워 있었다. 술 한 통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서로 때리고 죽였던 오스트리아군 병사들이다. 대공은 그들을 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정말 무언가 끔찍한 기습이 있었는가 보군.”

사람 잡는 헛똑똑이보다 바보가 나아
손자병법 행군(行軍) 제9편에 보면 평소 조직의 규율에 대한 의미 있는 말이 나온다. 장수가 평소에 행하던 대로 명령해 부하들을 가르치면 부하들이 복종할 것이다(令素行以敎其民 則民服). 그러나 평소에 행하지 않던 것을 명령해 부하들을 억지로 가르치려 한다면 부하들이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令素不行以敎其民 則民不服). 평소에 행하던 대로 명령을 하면 부하들이 기꺼이 복종하는 이유는 그들과 더불어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令素行者 與衆相得也).

군대나 회사 같은 조직사회에는 나름대로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규율이 있다. 그런데 그 규율이 평소에 잘 지켜지도록 습성화가 되었다면 어떤 상황이 터졌을 때 구성원들은 무엇을 해야 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될 것인가를 명확히 구분해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돌발 상황을 만나도 평소에 그러했던 것처럼 리더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게 된다. 반면 평소에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어떤 행동을 갑자기 어떤 상황에서 강요하게 되면 구성원들이 그 말을 들을 리 없다. 그래서 평소에 규율을 지키는 것을 습성화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카란세베스에서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평소 병사들의 해이한 마음자세와 흐트러진 규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술과 여자에 대한 교육이 소홀했다.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전쟁터에선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갈 수 있다. 리더가 이를 잘 파악해 평소부터 엄격하게 군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을 교육시키고 습성화시켰다면 그날 밤의 추태는 없었을 것이다.

큰 일은 항상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체로 남자가 실수하게 되는 원인은 술과 돈과 여자다. 이것만 이길 수 있다면 대부분의 큰 사고는 막을 수 있다. 패가망신(敗家亡身), 평생을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술과 돈과 여자는 ‘강한 남자 콤플렉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아예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에겐 ‘강한 남자 콤플렉스’는 별 의미가 없다.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쓸데없는 짓은 안 한다. 대체로 이런 콤플렉스에 빠져들기 쉬운 사람은 스스로 어느 정도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얼치기’란 단어가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를 말한다. 언제나 얼치기가 일을 낸다. 지도자 중에도 얼치기 지도자가 있다. 요제프 2세가 전형적인 사례였다. 이들의 특성은 엉뚱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분에 넘치는 일을 질러대는 것이다.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를 집필한 에릭 두르슈미트는 “평화로운 시절이나 나라가 서서히 쇠퇴할 때는 지도자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얼치기 지도자는 일만 잔뜩 벌여놓고 뒷감당이 안 될 때면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그러면 아무런 권한도 없고 특별히 책임이랄 게 없는 국민들은 그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강한 자’는 어떤 자인가? 강자에게는 더 강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해질 수 있는 자가 진짜로 강한 자다. 손자가 말한다. 세상의 리더들이여, 진정한 의미의 강한 자가 되라. 그러나 얼치기는 되지 말라. 아주 똑똑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바보가 되라. 그게 자신과 여러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노병천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장 1919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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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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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