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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별 기준 스코어였던 보기, 골프공 좋아지며 파에 자리 내줘

골프용어 보기(Bogey)의 사전적 의미는 ‘두려운 것’이다. 동의어로는 보기맨(Bogey Man)이 있다. 골프에서 ‘보기’라는 개념은 1890년 영국 코벤트리 골프클럽 회원이었던 휴 로서램이 만들어 냈다고 스코틀랜드 골프역사에 기록돼 있다.

현재는 기준 타수보다 한 타를 더 치는 것을 보기라고 하지만 로서램은 당시 홀마다 ‘잘 치는 골퍼가 기록해야 할 표준 점수’를 보기라고 불렀다. 지금은 홀별로 이븐 스코어를 파(Par)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보기라고 불렀던 것이다. 더 나아가 영국 해군장교였던 토머스 브라운 박사는 ‘가상의 잘 치는 골퍼’를 ‘보기맨(이븐 스코어 골퍼)’ 혹은 ‘미스터 보기’라고 불렀다.

보기맨이란 서양에서 어른들이 아이에게 “말 안 들으면 보기맨이 잡아간다”라며 겁을 줄 때 나오는 표현이다. 실체가 없는 상상 속의 무서운 인물이다. 우리의 도깨비 정도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그때의 골퍼들도 그런 무서운 이미지를 빌려와 무섭도록 잘 치는 상상 속의 보기맨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보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코벤트리 골프클럽의 코스 조감도.
브라운 박사의 아이디어가 클럽 회원들로부터 동의를 얻으면서 매치플레이에서 보기를 기준으로 하는 스코어 방식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Hush! Hush! Hush! Here Comes the Bogey Man”이라는 노래가 런던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 영향을 받아 다른 클럽들에서도 홀별 기준 스코어를 보기로 부르는 것이 유행이 됐다.

1892년 봄 브라운 박사는 군인 전용 클럽인 유나이티드 서비스 골프클럽에서 라운드를 하게 됐다. 그 클럽의 명예회원인 실리 바이덜 대령이 브라운 박사로부터 보기맨에 관한 얘기를 전해 듣고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클럽에 맞는 보기 스코어를 산정했다. 그리고 바이덜 대령은 보기 스코어를 기준으로 플레이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고 한다.

“이 클럽의 회원은 모두 군 계급이 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늘 실수 없이 플레이를 하는 우리의 새로운 회원인 보기맨은 지휘관급인 대령(colonel)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클럽에서는 상상 속의 회원에게 ‘보기 대령(Colonel Bogey)’이라는 명예계급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골프 역사서에 언급되는 보기 대령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보기 대령의 높은 인기는 미국에까지 퍼졌다. 대한골프협회(KGA) 규칙분과위원회 박종업 위원장은 저서 골프 룰 그 역사와 해석에서 ‘1902년 미국골프협회(USGA)가 이 새로운 방식을 먼저 승인했다’고 언급했다. 전통을 중시했던 영국의 R&A는 1912년에야 보기 플레이에 대한 규칙을 발표하고 1920년 공식 승인했다.

당시 보기 대령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 육군의 군악대 지휘자였던 F J 리켓 중위가 ‘보기 대령 행진곡(Colonel Bogey March)’까지 작곡했다. 이 곡은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행진곡으로 사용됐으며 유튜브에서도 이 곡을 감상할 수 있다.

1890년대에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파(Par)라는 개념도 존재하긴 했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보기 대신 파가 기준 타수의 명칭으로 사용되게 된 건 골프공의 진화가 큰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골프공 속에 고무 재질의 코어가 사용되면서 더 적은 타수로 그린에 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점차 보기가 파보다 한 타 더 많은 스코어를 의미하게 됐다. 파가 보기보다 더 좋은 성적이라는 것으로 인식이 바뀐 것이다.

USGA는 1946년 공식적으로 ‘보기 경기’라는 용어를 ‘파 경기’라는 용어로 변경했고 R&A도 1950년 ‘보기 혹은 파 경기’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파 경기는 1952년 R&A와 USGA의 첫 번째 공동규칙에서 확정되었다. 보기는 파의 아버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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