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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싹 감기는 이 선율은 통속적? 대중적?

지난 회 음악감상실 르네쌍스의 추억 몇 줄을 남기고 번개같이 일본을 다녀왔다. 너무 많은 인기(?)를 감당 못해 피신하듯이 일본 나라시로 떠난 김정운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5년 전인가 교환교수차 그가 도쿄에 체류할 때도 두 번이나 찾아가 요코하마의 벚꽃 지는 장관을 만끽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의 심리에 정말 무심한 심리학자 김정운은 일주일 내내 정신 없이 바쁘다가도 단 하루 홀홀해지면 외로움을 못 참는, 자칭 외로운 늑대다. 어찌 한적한 나라마치(거리)의 일상을 친구 없이 견디겠는가.

아쉽게도 나라에는 르네쌍스가 없었다. 도쿄에는 꽤 여러 곳의 르네쌍스, 즉 고풍스러운 클래식 음악다방이 남아있어 그 예스러운 아취와 커피향을 즐기곤 했는데 말이다. 본인 허락을 받지 않고 미리 폭로하는 바지만, 내가 다녀가고 며칠 후 그는 귀국해서 대학에 사표를 내고 말았다. 더 이상 어디 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겠노라던 오랜 고심 끝의 결단이었다. ‘형, 나 정말 미쳤지?’ 하는 그 표정은 해방감과 막막함이 겹쳐져 형용불가의 철학적 데드마스크로 굳어져 보였다. 부디 그 얼굴에 자유의 햇살을!

일본의 고도에서, 가령 도다이지(東大寺) 정원에서 사슴 무리에게 엉덩이를 들이받혀 킬킬대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와 달리 습기만 가득 찬 이자카야 주점거리에서 어떤 멜로디를 흥얼거렸던가. ‘따-다다 딴딴딴 따라라단 뿅!’ 이건데 젠장, 글은 사운드를 전할 방법이 없다. 계속 뇌리에 맴돌이 하던 선율은 출국 직전까지 듣다 떠난 랄로(위 그림)의 첼로 협주곡 도입부였다. 르네쌍스 추억에서 일본행까지, 아니 지금도 계속 ‘따-다다’ 상태다. 그만큼 인상 깊고 강렬한 도입인데 대중가요 용어로 하자면 귀를 잡아당기는 후크송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이야깃거리다. ‘나는 랄로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기를 꺼려하게 되는 바로 그 점. ‘스페인 교향곡’이라고 이름 붙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이 첼로 협주곡으로 랄로의 명성은 드높건만 의외로 유명 연주자의 레코딩이 그리 많지 않은 바로 그 점.

야노스 슈타커가 연주한 랄로의 첼로 협주곡.
그 점은 대중성 혹은 일종의 통속성을 의미한다. 랄로가 구사하는 선율은 어떤 무딘 사람에게라도 찰싹 감겨올 법한 대중 정서가 담겨 있다. 쉽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가령 김기창의 바보산수는 무척이나 쉬워 보이지만 아무도 그의 작품을 대중적 또는 통속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김병종의 수묵화는 참말로 대중적으로 쉬운 그림으로 보인다는 뭐 그렇다는 이야기…. 어쨌거나 어느 고적한 밤에 사라사테의 치고이너 바이젠에 심취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제가 사랑하는 곡은 ‘치고이너…’라고 말하기는 좀 거시기한 그런 것이 랄로에게 느껴진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랄로의 첼로 협주곡을 매우 좋아하고 사랑한다. 르네쌍스 앞좌석에는 남루하고 냄새 나는 옷차림의 사내들이 허공에 대고 열심히 지휘를 하는 것이 일상적 풍경이었는데 그럴 용기가 없었던 나는 전곡이 외워지는 이 협주곡이 들려오면 남 몰래 손가락 지휘를 하고는 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작곡가 랄로와 나의 벗 김정운의 이미지가 자꾸만 겹쳐진다. 유럽에서 엄청나게 어려운 학위 과정을 거쳐 독일 강단에도 섰던 경력을 가진 터라 학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싶어 하건만 그가 행하는 강연·방송·저술은 무척이나 대중적 내용물이다. 배고프게 고고하기보다는 풍요와 번영(!)을 안겨주는 대중적 명망을 스스로 선택한 것인데 본인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발자크 소설에도 무척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상아탑과 대중사회 사이에서 고뇌하는 청년의 번민이다. 곁에 있는 나는 풍요로 스트레스 받는 벗을 향해 자꾸만 이죽거린다. ‘두 가지 떡을 다 쥐려고 하지는 마.’

사실 진지하게 규명되어야 할 것은 대중성과 통속성의 구분이다. 양자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섬세하게 들여다본다면 질적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가령 랄로의 첼로협주곡 3악장을 들으면 처음 들어도 꽤 귀에 익숙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페인풍 하바네라를 변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반복적인 민속 선율이 주는 익숙함이 그것인데 그런 익숙함이 곧 대중성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속성은 그런 익숙함에서 무언가가 결여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 결여, 다른 말로 진부함과 상투성은 뭐랄까 음악의 경우 단박에 느낄 수는 있는데 말로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 랄로는 혹은 어떤 사람은 대중적인가 통속적인가. 그 차이를 심판하는 사람은 대중이어야 할까 전문가여야 할까. 어라, 이야기가 샛강으로 새고 있네. 랄로는 그렇다 치고 나의 벗 김정운의 야심작 ‘에디톨로지’가 집필되고 있는 중인데 미리 축하해도 됨세. 더 이상 학문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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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