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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인간의 ‘현재’는 5초 … 고만큼 살면서 악다구니치나

요즘 심리학이 대세다. 왜 그럴까. 불안해서 그렇다. 인간은 죄다 불안하다. 존재의 본질은 불안이다. 도무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사회를 만들어 함께 살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함께 있으면 조금이라도 덜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함께 있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난 아버지의 아들이고, 아들의 아버지고, 아내의 남편이고, 형의 동생이며, 동생의 형이다. ‘단독자(單獨者)’로서의 나를 견디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키르케고르의 실존철학이 그리 인기가 없는 거다.

키르케고르나 마르크스나 똑같이 헤겔 철학의 비판에서 출발하지만 마르크스의 경제철학이 인류 역사에 훨씬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도 인간의 존재 불안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실존철학의 주장은 명확하다. 인간은 원래 외롭고 고독한 것이니 참고 견뎌야 한다는 거다. 인간은 절망적이고 낯선 세계로 나아가는 결단을 내려야만 이 존재의 근본적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아무도 이 결정을 도와줄 수 없다. 혼자 견뎌야만 한다. 반면 마르크스의 존재 설명은 좀 위안이 된다. ‘자인 베스팀트 베부스트자인(Sein bestimmt Bewusstsein)’, 즉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거다. 내 불안, 절망은 사회경제 구조에 의해 야기된 거다. 내 책임은 별로 없다. 구조가 문제다.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면 내 존재적 불안도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다. 오히려 이 구조 변화에 참여하지 못하면 불안과 절망은 계속된다. 아, 이 얼마나 확실하고 안심되는 설명인가.

나는 이 마르크스 이론을 기초로 한 ‘비판심리학(Kritische Psychologie)’을 공부하러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갔다. 유학간 지 불과 2년도 안 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몇 달 전까지 독일이 통일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 독일 통일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신나치주의자들 아니면, 앞뒤 못 가리는 초보 마르크스주의자들뿐이었다. 나름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은 ‘통일’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그리고 ‘한 방에’ 베를린 장벽은 사라졌다. 인류 역사상 인간 불안의 본질에 대해 가장 분명하고 확신에 찬 설명이었던 마르크스주의도 동시에 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순간까지 난 역사의 가장 앞에서 서 있다고 자부심에 차 있었다. 매일같이 베를린대의 도서관 한구석에서 마르크스·엥겔스의 원전을 읽으며 한국 사회 변혁을 꿈꿨다. 미래는 내 신념에 의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역사의 가장 뒤편에 서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맨 앞에서 용감하게 수풀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는데, 내 바로 뒤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가기 시작하는 그런 황당함이었다. 황당함은 곧 더 큰 절망, 견딜 수 없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내 존재불안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그 확실했던 이론적 근거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최종윤
그 이후로 내 성격이 이토록 이상해진 거다. 난 원래 무척 착하고 부드러운 성품의 휴머니스트였다. 많은 여인이 이렇게 따뜻한 날 사랑했다. 가끔은 눈을 흘기며 날 ‘불덩이’ 같다고도 했다. 아, 아름답던 그때 그녀들. 이를 나는 ‘보편적 인류애’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를 둘러싼 이 보편적 인류애에 근거한 휴머니즘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다. 어떠한 여인도 불안한 인간 따위는 절대 사랑하지 않는 법이다.

왜 한국 심리학자들 책이 대세인가
미래의 발전 방향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한국 사회에서 불안은 아주 다양한 외피를 입고 나타난다. 한국인들의 ‘집단 불안’을 이해하면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사안이 ‘보수 꼴통’과 ‘좌빨’로 아주 간단히 나뉘는, 이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이분법도 집단불안에서 출발한다. 불안할수록 적을 분명히 하면 내 존재가 확인되는 까닭이다. 집단불안이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힘을 얻게 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부터다. 그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다. 불안할 여지 자체가 없었다. 우선 가난을 극복해야 했고, 인간적인 삶의 조건이 되는 민주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우선이었다.

IMF 사태는 세계사에서 유례없이 승승장구 잘나가던 한국 사회가 기초부터 휘청되는 공포의 경험이었다. 그 후 각종 경영컨설팅이 유행한다. 불안한 경영자들은 전문가의 컨설팅을 통해 그 엄청난 불안을 견딜 수 있는 지혜를 얻으려 했다. 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컨설턴트들이 제시하는 기업경영의 원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해보려 했다. IMF 사태 이후 각종 처세서, 자기계발 관련 도서가 도서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수십 가지 습관을 가져라’와 같은 처세, 경영의 베스트셀러는 문학이나 인문사회 관련 베스트셀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판매부수를 기록하곤 했다. 리더십 관련 책들도 한때 대단했다. 한 주만 지나면 ‘무슨 리더십’하는 또 다른 이름의 리더십 이론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곤 했다. 성공과 관련된 처세, 경영 서적의 절대 우위는 지금도 여전하다. 뭔가 열심히 하면 성공하고, 성공하면 더 이상은 불안해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그 추세는 상당히 가라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자들도 현명해졌다. 온갖 좋은 이야기는 다 모아놓은 처세, 경영서를 읽는 그 순간에는 주먹을 불끈 쥐지만 구체적 삶의 변화에는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쪽 동네 저자들의 동어반복식 글쓰기도 이런 변화에 한몫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처세라는 개념 자체가 최소한의 자기성찰도 없는 기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성공이냐는 근본적 질문에도 어떤 대답도 해주지 못한다. 수천 년 지속된 인간의 존재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솔루션이란 이야기다.(내 책도 가끔 이 처세, 성공서로 분류된다. 환장한다.)

처세, 경영 관련 주제가 한풀 꺾인 그 틈새로 요즘 심리학 관련 서적이 대세다. 한국뿐만 아니다. 미국·독일, 내가 요즘 지내는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 리스트에는 심리학 관련 책들이 꼭 포함돼 있다. 흥미롭게도 요즘 한국의 서점가를 휩쓰는 심리학 관련 서적의 저자들은 대부분 한국 학자들이다. 저자의 대부분이 미국 사람이었던 성공, 처세서들과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요즘 가끔은 제정신이라는 책으로 상한가를 치고 있는 고려대의 허태균 교수, 다양한 심리학적 주제로 수년간 종횡무진하고 있는 연세대 황상민 교수, 그리고 프레임이라는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는 서울대의 최인철 교수 등은 모두 심리학과 교수다. 여기에 청춘을 위로하는 심리적 처방으로 200만 부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큰 틀에서는 심리학적 범주에 들어간다. 어쩌다 뒷발질로 ‘남자의 심리’라는 틈새시장을 찾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과 같은 내 책들도 당연히 심리학 카테고리로 분류된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난 제대로 공부한 심리학자다!) 그런데 왜 이토록 심리학이 대세인 것일까?

인류 최고의 발명품, 심리학
심리학은 ‘여기, 그리고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불안의 본질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불안’이다.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바로 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불안을 해결하는 개념으로 구축된 학문이다. 원근법을 통한 주체의 발견은 공간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거다. 끝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3차원 공간의 막막함과 공허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좌표를 확실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x, y, z의 축을 세우고 그 각각의 축이 교차되는 지점에 관찰 주체를 세우면 공간에 방향성이 생긴다. 일단 방향이 잡히면 아무리 무한대의 공간이라도 그리 두렵지 않다. 통제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근법의 소실점은 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의 편집 가능성’을 뜻한다.

원근법을 통해 구축된 객관성과 합리성은 공간적 편집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계산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공간에서 좌표가 확실하게 잡히는 존재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이제 인간은 자연이라는 공간을 자기 원하는 방식대로 편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더니티가 제국주의의 외피를 입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공간 통제 가능성의 신념 때문이다. 문명이란 개념 또한 바로 이 공간의 통제라는 이념 위에 성립한다. 제국주의란 ‘미개한 지역의 통제, 즉 문명화’라는 서구 모더니티 가치의 구체적 실현인 것이다. 미개한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통제해야 할 원시공간의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제국주의가 그토록 폭력적인 거다.(그러나 오늘날 인간이 극복했다고 믿었던 공간의 공포는 자연재해, 환경오염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무한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인간의 근원적 공포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더 큰 난관이 남아 있다. 시간이다. 그래서 주체의 형성이 완성되는 모더니티의 마지막 순간에 심리학이 나타나는 것이다. 심리학은 공간과 시간적으로 유한한 존재, 즉 ‘여기와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이 가장 공들여 개발한 개념이 ‘발달’과 ‘성숙’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시간이 어떤 일정한 방향을 향해 흐른다’(발달)고 생각하면 그리 두렵지 않다.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면 잘못된 거라며 고칠 수 있고, ‘제대로 흐른다’(성숙)고 믿어지면 행복하다.

오늘날 수많은 심리학 분과가 존재하지만 심리학의 본질은 ‘발달심리학’이다. 심리학의 ‘발달’과 ‘성숙’의 개념은 역사학에서 ‘발전’의 개념과 동일하다. 서구 모더니티는 사회 혹은 국가와 시간의 관계를 역사 발전이라는 개념을 통해 구체화한 반면, 개인과 시간의 관계를 발달 혹은 성숙의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그래서 심리학 실험실을 창시한 빌헬름 분트가 가장 먼저 연구한 것도 인간이 느끼는 현재의 범위다. 도대체 현재의 단위가 얼마만큼인가를 결정해야 시간을 편집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수백 번의 실험을 반복한 끝에 분트는 인간의 ‘현재’는 5초 정도라고 결론 내렸다. 우리는 고작 5초를 느끼며 살 뿐이라는 이야기다.
아무튼 고작 5초도 안 되는 짧은 현재를 사는 한심한 인간들이 그 권력을 잡겠다고 고함치고 싸우는 것을 보면, 참 많이 서글픈 느낌이 드는 요즘이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와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의 저서와 방송 활동, 특강을 통해 재미와 창조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cwkim@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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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