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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책은 언제 말할 건가

4·11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23일 선거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복원된 청계천에 세워져 있는 청년노동자 전태일의 동상 앞에서 행사를 열었다(사진). 한명숙 대표와 박지원·정세균 의원 등은 손에 ‘MB 심판’이라는 구호가 적힌 패널을 흔들었다. 그 광경을 보며 입맛이 썼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패널에 적혀 있는 MB(이명박 대통령)가 조성한 장소라는 아이러니 때문만은 아니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386 세대 치고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가슴 먹먹하지 않았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책을 읽으며 눈시울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60년대와 70년대의 산업화 덕분에 우리는 지금 세계 10대 무역 강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산업화 과정에는 인간적 존엄성을 송두리째 희생당한 수많은 여공, 노동자, 수많은 전태일이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그럼 당시에 재단사 전태일에게 일감을 맡겼던 평화시장 상인들은 악덕 자본가였던 것일까.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그들 역시 그저 하루 벌어 살기에 급급했던 중소 상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이 몇천 달러도 안될 때의 슬픈 과거사다.

민주당이 축제가 돼야 할 선거대책위 출범 행사를 우산을 쓴 채 전태일 동상 앞에서 강행한 이유는 뻔히 들여다 보인다. 분신을 통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의 강렬한 이미지를 차용해 새누리당을 공격하기 위한 것일 게다. 하지만 지난 시대의 역사적 아픔을 그렇게 정치적으로 악용해도 되는 걸까. 그게 과연 전태일을 기리는 일일까. 그게 6·25를 들먹이며 민주 세력을 탄압했던 과거 군사정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입맛이 썼던 건 그런 의문 때문이다. 전태일은 41년 전인 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했다. 민주당이 암시하고 싶은 건 여당인 새누리당이 거기에 책임이 있다는 것일 게다. 나는 그게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게 분명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 신입생에 불과했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 칭송받는 게 부당하듯이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딸이 책임져야 할 이유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연좌제는 헌법상 금지돼 있다.

전태일 동상 앞 출범식도 그렇지만 요즘 민주당의 태도는 이해가 안 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입만 열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외치는데, “개방에 관한 한 진보의 주장이 맞은 적이 없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강행하고, “해양대군이 필요하다”며 제주 해군기지를 밀어붙인 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이제 와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데 상식을 넘어서는 꼼수요 반칙일 뿐이다.

요즘 곰곰이 생각해본다. 2008년의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제1야당인 민주당이 한 게 뭐였던가. 구조적인 청년 실업을 해소하는 데는 뭘 했던가. 한·중·일 등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별게 없다. 돌이켜보니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더불어 안철수 바람이 불고,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면서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이 곤두박질 칠 때까지 민주당의 여론 지지도도 형편없었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일종의 정치적 로또에 당첨됐을 뿐 국민에게 뭘 제대로 해준 게 없다. 옛날 얘긴 그만두자.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다수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젠 달라져야 한다. 다수당이 되면 양극화는 어떻게 극복할지, 국제 경쟁력은 어디서 찾을지, 교육제도는 어떻게 고쳐나갈지 제발 말해 달라. MB의 임기는 어차피 올해면 끝나고 사실은 지금도 많은 국민의 맘속에선 이미 제쳐져 있다. 우리가 듣고 싶은 건 ‘MB심판’이라는 구호가 아니라 민주당의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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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