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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2주기] 말 없는 바다 … 초병의 눈만 반짝여

26일이면 천안함 폭침 사건 2주기다. 천안함 침몰해역이 내려다보이는 백령도 연화리의 바닷가 절벽 위에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이 서 있다. 주민들은 이곳이 백령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승조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들르는 필수코스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은 위령탑에 부착되어 있는 승조원들의 얼굴 동판. [백령도=김태성 기자]


22일 오후 인천 백령도의 연화리 앞바다. 2년 전 칠흑 같은 밤에 천안함이 폭침당하며 46명의 수병이 가라앉은 곳이다. 그들이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그 바다는 침묵한 채 너울만이 일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해안가에는 총을 움켜쥔 해병 초병들이 먼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백령도 폭침 현장 르포



 섬 일주도로 곳곳에는 ‘기억하자 46용사 응징하자 적 도발’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날 백령도에서는 천안함 2주년 및 핵안보정상회의 대비 비상훈련이 잇따랐다. 해병 전차부대가 굉음을 울리며 달려가는 가운데 하늘에는 헬기들이 잇따라 날아갔다. 철모를 눌러 쓴 병사들은 논두렁을 태우면서 피어 오르는 연기 속을 행군하고 있었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은 지난해 1주년 때 세워졌다. 사고 해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연화리 해안 절벽 위 기단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탑 전면에는 이창기 준위로부터 막내인 장철희 일병까지 46용사의 얼굴 부조가 새겨져 있다. 왼편에는 이근배 시인의 ‘불멸의 용사여, 바다의 수호신이여’가 검은 돌에 새겨져 있다.



 ‘아, 그날 2010년 3월 26일 파도도 잠드는 시간/누구는 아버지 어머니께 문안 전화를 드리고/누구는 연인을 그리는 편지를 띄우고/꽃다운 젊음들이 평화의 꿈을 펼칠 때/어찌 뜻하였으리 하늘이 무너지는 한순간의 참화가/우리의 고귀한 아들들을 앗아갔어라…’



 이 탑은 지금 백령도의 필수 관광코스가 돼 있다. 이날도 합승버스를 타고 온 10여 명의 남녀가 용사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27일에는 인천시와 해군·해병이 함께하는 추모식이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차를 몰아 용트림바위에 올랐다. 2010년 4월 15일 오전 9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함미를 건져 올렸던 해역의 조망 지점이다. 당시 숲을 이뤘던 TV 카메라들은 간 곳 없고 갈매기 떼만이 해안 절벽이 하얗도록 날아 오르고 있었다. 순간 산화한 천안함 46용사들이 갈매기로 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수가 가라앉았던 장촌리 해변으로 나갔다. 당시 어군(漁群)탐지기로 함미 선체를 처음 찾아냈던 까나리잡이 배 선장 장세광(37)씨는 그물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천안함 사태 이후 주민들은 늘 북한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까나리잡이도 예전 같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기다시피 했던 2년 전과 달리 섬 전체적으로는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정부의 서해 5도 지원사업으로 섬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져 식당·숙박업소 등이 호황이었다. 26곳의 대피호 공사를 비롯, 헬기장·병원·도로 및 하수도 정비사업 등이다. 진촌리에서 식당을 하는 김점옥(55)씨는 “손님 절반은 공사장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김정섭 백령면장은 “지난해 15만 명이 다녀가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며 “하루 평균으로는 1000여 명의 외지인이 들어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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