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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62) 여권 젊은 실세들과 갈등

2004년 8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의정연구센터’ 창립총회에서 열린우리당 서갑원 의원(왼쪽)이 이헌재 부총리(가운데)를 안내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광림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 여당의 젊은 국회의원들이 만든 이 모임에 이 부총리가 참석하자 ‘화해의 자리’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중앙포토]


386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13개월의 경제부총리 임기 중 나는 모두 세 번 사임설에 휘말렸다. 번번이 배경에는 386과의 갈등이 있었다. 생각하면 첫 번째 사임설이 나돌았던 7월에 사표를 던졌어야 했다. 그때 386들이 조금만 더 강하게 나왔어도 그랬을 것이다. 이광재가 중재에 나서지만 않았어도.

“경제를 못 배웠다”는 한마디에 발끈한 386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계기는 내 발언이었다. 2004년 7월 14일 한 여성 경영자모임에 강연을 가서 악의 없이 한 말이 보도되면서다. 그 유명한 ‘경제 못 배운 386’ 발언 말이다.



 “경제 발전의 주역을 맡아야 할 386세대가 80년대 초 대학 시절에 정치적 암흑기를 거치면서 경제 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 자리에 기자가 있다는 걸 몰랐다. 알았다면 더 다듬어 말했을 것이다. 다만 그 발언은 공격이 아니었다.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안타까웠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족쇄를 풀고 나온 직후 여권은 기세등등했다. 탄핵 여파로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젊은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배출됐다. 이들은 기세를 살려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일명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니,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이니, 소위 ‘개혁 정책’들이 계속 쏟아졌다.



 이해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고 일자리부터 만들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신용불량자 정책을 발표한 지 얼마나 됐나. 아직 경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재정경제부는 중소기업 정책과 벤처기업 활성화 정책, 뉴딜식 종합투자계획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었다. 강연에서 “우리 경제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환자 같다”고 강조한 것도 그래서였다. 진심으로 참여정부의 젊은 주역들이 시장을 읽고 정책을 내놓길 기대했다. 결과적으론 내가 청와대 참모진을 공개 비난한 것처럼 부각됐다.



 일파만파. ‘부총리와 대통령 참모진의 반목’ ‘386에 작심하고 쓴소리’ 신문마다 요란했다. 386들은 당장 발끈했다. “시장경제를 모르는 게 아니라 인간적 자본주의를 하자는 것”이라고 해명하는 이도 있었다. “부총리가 그렇게 경제를 잘 아는데 나라 경제는 왜 이러냐”며 인신 공격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는 뒤에서 공격했다. 2003년 한 시중은행에 자문 활동을 하고 보수를 받은 것을 언론에 흘린 것이다. 취임 전 검증 과정에서 이미 밝히고 문제가 없다고 확인 받은 사안이다.



 나 역시 화가 잔뜩 났다. 정책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건 언제든 받아준다. 하지만 뒤에서 공격하는 건 못 참는다. 7월 19일 저녁 한남동 집앞으로 찾아온 기자들을 작심하고 만났다. 이미 사임설이 돌고 있었다. 그동안 쌓아둔 말들을 모두 터뜨렸다.



 “요즘은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런 식으로 뒷다리 잡아서 시장경제가 되겠나. 분양원가 공개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국력을 낭비하나. 과거에 매달리는 정책에만 온 나라가 빠져 있다. 언론 관계는 왜 정상화시키지 않나. 홍보활동을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효과를 볼 수 없다.”



 얼굴 없는 비방에 넌더리가 나던 참이었다. 청와대에 파견 간 후배들은 취임 직후부터 내게 조언했다.



 “부총리님. 청와대 젊은 친구들 좀 만나시면 어떻습니까. 부총리님에 대한 오해가 있는지 말끝마다 험담입니다. 제가 섣불리 옹호하고 나섰다가 저까지 공격당해 혼났습니다.”



 처음부터 내 취임이 못마땅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취임 직후부터 인사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기싸움을 벌였다. 2월 말에 있었던 주택금융공사 초대 사장 인사. 내가 재경부 산하 어느 공기업장보다 중시했던 자리다. DJ 정부를 그만두며 “서민 주택 문제를 챙겨달라”고 당부했던 나다. 그 정책을 실행할 자리. 재경부 국고국장 출신 김우석이 후보로 올라 있었고, 나도 그가 최적임이라고 생각했다. 청와대는 외면했다. 재무부 출신은 안 된다는 사인이다. 다른 사람을 내정했다. 부총리에게 사장 임명권은 없어도 제청권은 있다. 청와대가 내정한 후보에 대해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끈 후 마지못해 제청을 해주었다. 힘겨루기 하는 꼴이 흉해 보여서다.



 386과의 갈등을 중재한 건 이광재였다. 국정상황실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다. 저녁이나 사달라기에 나갔더니 종로 한 한정식집에 여당 젊은 국회의원 예닐곱 명이 나와 있었다. 머쓱한 분위기. 밥을 먹고 나니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졌다. 웃으며 헤어졌다. 언짢았던 내 마음도 그땐 꽤 가셨었다.



 이 해프닝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재경부 직원들까지 중간에서 많이 시달렸다. 정정당당한 토론은 괜찮다. 그러나 뒤에서 하는 비방엔 짜증이 났다. 부동산 세제를 놓고는 청와대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김수현 비서관 등과 대놓고 설전을 벌였지만 이들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나와 생각이 달랐지만 이들은 당당하게 토론했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내가 조금 굽혔으면 훨씬 쉬웠을 수도 있다. 공무(公務)가 아니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때 나라엔 시급한 경제 현안이 한둘이 아니었다. 청와대 참모진과 죽이 척척 맞아 돌아가도 시간이 부족할 판국이었다. 그런데 건건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럴 때마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내가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고생하는 재경부 직원들에게 미안했고 정책에 숨통이 막힌 것 같아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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