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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주민·국가는 뒷전으로 밀린 ‘강정마을’

최경호
사회1부 기자
19일 오전 9시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화약보관창고.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대 30여 명이 서로의 팔을 단단히 연결한 채 화약 운송을 막고 있었다. 구럼비 바위의 중심인 너럭바위 발파를 저지하려는 ‘인간띠’였다. 이들은 ‘해군기지는 미군기지’ ‘구럼비 폭파 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같은 날 오후 5시쯤 해군기지가 건설 중인 강정마을. 길을 걷던 한 남성이 2007년 해군기지 유치에 앞장선 윤태정(57)씨에게 겸연쩍은 얼굴로 눈인사를 했다. 윤씨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오랫동안 해군기지를 반대해 온 동네 후배가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이다. 윤씨는 “(인사를 한 동네 후배가) 반대파들이 있을 땐 또다시 나에게 욕설을 퍼부을 것”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해군기지 문제로 부모·자식 간에 반목하는 집안도 있다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 5년간 계속된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슈는 이념논쟁으로 치달아왔다.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의 두 축인 주민과 정부의 뜻은 뒷전으로 밀린 채 시위대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9대 총선이 코앞에 닥치자 야당 정치인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갈등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그러는 동안 주민들의 마음고생은 극에 달해 있다. 현재 강정마을에서 평일에 시위에 참여하는 주민은 20명이 채 안 된다. 반대 주민 30여 명이 지난해 9월 해군기지 공사가 재개된 후 생업 쪽으로 관심을 돌렸기 때문이다.

 반면에 외부에서 들어온 시위대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해 20여 명에 불과했던 활동가들은 지난 7일 구럼비 해안 발파를 전후로 4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때부터 일주일간 경찰에 연행된 시위대 68명 중 마을 주민이 단 2명인 점만 보더라도 민심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강정마을 주민은 1900여 명이다. 이 때문에 마을 안팎에선 “주민 2000명이 육지에서 온 핵심 시위대 20명의 눈치를 본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그래서인지 시위대가 지난 8일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던진 말은 역설적이지만 시사점이 크다. 시위대는 폭 30m의 강정천 맞은편에서 찬성 집회를 연 보수단체를 향해 “해군기지는 이념이나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진정으로 시위대의 말처럼 되기를 기원한다. 소모적인 이념논쟁 대신 주민들을 위한 논의로 떠들썩한 강정마을의 옛 모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경호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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