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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한국 섬유신화 일군 재계 큰별 김각중

경제부장국내 최초의 섬유기업인 경방을 중견그룹으로 성장시킨 김각중(사진)명예회장이 1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경방은 1919년 ‘우리 옷감은 우리 손으로’라는 창립 이념 아래 세워진 경성방직으로 출발했다. 국내 상장 법인 1호이자 41년 만주에 남만방적을 준공해 국내 기업중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했다.

 김 명예회장은 67년 대한화섬 상무 겸 공장장으로 경영에 입문했다. 미국 유타주립대에서 이론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40세 넘어 2세 경영인의 길에 뛰어들었다. 그는 경영인으로서 ‘상식과 양식에 따른 경영’을 강조했다. “상식을 무시하지 않고 양식에 따라 판단하면 경영실패는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 경방 회장에 취임한 뒤에는 사장에게 경영권을 맡기는 등 전문경영인을 우대했다. 경기불황이 극심했던 80년대 초반에는 사장으로 자진 강등했다가 회사가 정상화되자 복귀했다. 방직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든 90년대에는 경방필 백화점과 우리홈쇼핑,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개장하며 유통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김 명예회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99년 11월 그룹 해체로 사임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대신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그는 당시 ‘벙거지 회장’을 자임하며 실세가 아님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2001년 다시 회장에 선출돼 재계를 이끌었다. 96년 타계한 부친 김용완 회장이 64~66년, 69~77년 등 10년간 전경련 회장을 역임한 데 이어 부자가 14년간 재계 대표 자리를 맡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재계는 물론 정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2004년 출간한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 내가 가지 않은 길.에서 기업들이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가는 행태를 비판했다. 김 명예회장은 “공장들이 자꾸 해외로 옮겨가고 나면 대체 이 나라에 무엇이 남을까 두렵다”며 “기업은 떳떳하게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고 정부는 규제를 대담하게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노사문제도 무조건의 평등의식만으로는 풀리지 않으며 그같은 단순한 접근은 공멸의 길을 열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김 명예회장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성악과 피아노 연주가 프로급이었다. 장학재단인 경방육영회를 운영하며 2010년까지 학생 65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은탑산업훈장(83년), 핀란드1급기사훈장(84년), 뉴질랜드공로훈장(90년) 등을 수상했다.

유족은 부인 차현영(75)씨, 아들 준(49·경방 대표이사 사장), 담(47·경방 타임스퀘어 대표이사 부사장), 딸 지영(42)씨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7시. 문의 경방 타임스퀘어 02-263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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