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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소액주주 위상 달라진 주총 현장

김광기
경제부문 선임기자
192개나 되는 상장회사가 일제히 주주총회를 치러 ‘수퍼 주총데이’라 불린 지난 16일. 이날 주총 현장에선 과거와 사뭇 다른 장면들이 연출됐다. 일반 주주들이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폈고 회사는 이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포스코 주총이 대표적이다. 정준양 회장이 제2호 의안인 정관 변경의 건을 상정하려 하자 소액주주 박모씨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렇게 되면 책임경영이 악화될 소지가 있으니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다른 주주 김모씨도 “주주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여기저기서 “찬성합니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이 안건은 회사의 이사가 잘못된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때, 배상액을 연봉의 6배(사외이사는 3배)까지로 제한하고 초과액은 면제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정 회장은 배석한 법률 전문가와 상의했고, 곧바로 관련 항목을 삭제했다. 과거 같으면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회사 입장을 옹호하는 반박 발언이 나왔을 것이고, 표 대결로 밀어붙여 통과시켰을 것이다.

 왜 달라진 것일까. 소액주주들이 주주 권리 행사의 필요성을 자각한 것과 더불어 국민연금 등이 적극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날 주총에는 국민연금 등 국내외 기관투자가 20여 곳도 참석해 진행을 예의주시했다. 이들 중 일부는 포스코에 미리 이사책임 축소에 대한 반대의사를 전달했고, 만약 강행하면 표결에서 저지할 요량이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포스코의 1대 주주(지분율 6.8%)로서 대응책을 마련했었다”며 “주주 의견을 존중한 데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의 주총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같은 안건을 준비한 상장사가 100개를 넘지만 대부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해 포스코와 같은 선택을 내렸거나 그럴 움직임이다. 국민연금의 주총 안건 반대 비율은 올해 부쩍 높아졌다. 지난해 7%였던 것이 15% 선을 넘어설 전망이다. 주총 거수기로 통했던 자산운용사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주의 의결권은 상법에 엄정히 보장된 것이지만, 무시당해 왔다. 이유를 달자면 기업의 성장을 위한 권리 유보였다. 하지만 기업권력의 독점이란 폐해도 낳았다. 총선·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주화 논의가 한창이다. 재벌 해체론까지 등장한다. 그렇게 험한 공약으론 될 일도 안 된다. 땅에 묻혔던 주주권리만 복원시켜도 경제 민주화는 한결 앞당겨질 것이다. 우리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과 참정권을 되살려 정치 민주화를 이뤘듯이 말이다.

 주총을 마친 한 상장사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 “꼼수가 더 이상 안 통할 것 같다. 정말 주주 무서운 줄 아는 정도경영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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