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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진실을 공격하는 야만사회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새누리당에서 정치학자 이영조에게 공천을 주었다. 그러자 진보·좌파에서 그가 쓴 영어논문의 표현을 공격했다. 5·18을 ‘popular revolt’라 했는데 이는 ‘민중반란’이란 뜻이고, 제주 4·3 사건은 ‘communist-led rebellion(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반란)’으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는 영어도 모르고, 사실관계도 틀린 야만적 공격이었다. 제대로 된 당이라면 매도를 반격하고 학자 이영조를 옹호했어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 비대위는 이런 공세에 편승해 공천을 철회했다. 이는 한국의 지성사(知性史)와 정치사에 남을 부끄러운 일이다.

 논문만 한번 읽어보면 누구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객관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강경군부가 popular revolt(민중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고 적었다. 진보·좌파에선 revolt가 반란이라고 하나 이는 무지한 것이다. 영어에선 봉기(蜂起)를 표현할 때 보편적으로 uprising과 함께 revolt를 쓴다. 카다피를 몰아낸 2011년 리비아 민주혁명 때 뉴욕타임스는 2월 28일 “French aid bolsters Libyan revolt(프랑스 지원으로 리비아 봉기가 힘을 얻고 있다)”고 썼다. 중동 언론 알자지라도 2월 21일 “Libya revolt spreads to Tripoli(리비아 봉기가 트리폴리로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민주혁명도 revolt로 묘사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2012년 1월 19일 “Egypt revolt loses legitimacy as brotherhood ignores women abuse(여성 시위자에 대한 경찰 폭행을 남성들이 방관해 이집트 봉기가 정통성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어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Opposition groups planned a day of revolt for 25 January(저항그룹은 1월 25일을 봉기의 날로 계획했다)”고 적고 있다. 진보·좌파 주장대로 하면 중동 민주혁명은 반란이 된다.

 세계의 언론과 학자들은 5·18도 revolt로 표현했다. 영국 BBC방송은 2009년 8월 “A mass popular revolt in Kwangju(광주 대규모 민중봉기)”가 유혈적으로 진압됐다고 보도했다. 한국 5·18 기념재단조차도 영문 홈페이지에 revolt라고 썼다. 이 교수는 5공 군부의 진압을 ‘massacre(학살)’라고 여러 차례 묘사했다. 그가 5·18의 역사적 성격을 ‘민주화 운동’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지식의 정확성이나 경력 논란으로 보면 이 교수가 아니라 비대위가 퇴장감이다. 김종인 위원은 5·18 진압세력이 주는 전국구의원직을 지냈다. 이상돈 위원은 천안함 폭침 9일 후 이는 어뢰공격이 아니며 정부가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중에 “경솔했다”고 사과했다. 이준석 위원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했다. 그런 사람이 revolt 단어 하나 해석하지 못한다.

 이 교수가 ‘communist-led rebellion(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반란)’이라고 한 건 제주 4·3 전체를 규정한 게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발표한 보고서대로 사건 전개과정을 썼을 뿐이다. 보고서는 앞부분에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긴장상황을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적고 있다. 이 교수는 이를 인용한 뒤 이어서 주민 수만 명이 정부군과 공산반군 사이에 끼여 살해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명기했다. 보고서대로, 사실대로 적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성(知性)은 후퇴하고 야만적 매도가 횡행한다. 마녀사냥이며 인민재판이다. 집권세력은 비겁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동지를 제물로 바친다. 선거와 갈등이라는 괴물이 한국 사회의 이성을 물어뜯고 있다. 지금은 이영조의 살점이 해체됐지만 나중엔 많은 이가 벌벌 떨게 될 것이다. 한국은 진실을 공격하는 야만사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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