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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2007년 노무현 남북 FTA 제안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북한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좀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구상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 전략 차원에서 추진됐던 큰 그림의 하나가 남북 FTA였다. 2004년까지 단 한 개의 나라와도 FTA를 맺지 않았던 한국이 칠레를 필두로 싱가포르,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인도, 유럽연합(EU), 페루, 그리고 미국과 동시다발적으로 협상을 벌여나갈 무렵. 그 ‘FTA 로드맵’의 최정점에는 남북 FTA가 자리하고 있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와 FTA를 체결한 뒤 북한과 FTA를 체결하려 했다는 얘기다.



김현종 “중국·홍콩처럼 남북FTA 하시죠”
노무현 무릎 치며 “신기하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 ”

‘동시다발적 FTA 추진 전략’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건의해 한국을 세계 통상(通商)리그에 진출시킨 김현종(52) 전 통상교섭본부장.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마지막 날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환송 오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앙포토]


그의 회고록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번트를 대고 열심히 뛰어 슬라이딩까지 해가며 1루에 진출했다. 그것이 칠레·싱가포르와의 FTA였다. 1루에서 2루까지의 도루는 흔히 있는 법이다. 캐나다, EFTA, 그리고 아시안 10개국과의 FTA가 그것이다.



 2루에서 3루까지 도루하는 것은 흔치 않지만, 국부를 늘리고 경쟁력을 갖춰 통일을 준비해야 하기에 2루에서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본·중국·아세안을 합친 시장보다 더 큰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EU와 협상을 시작했으며 중국과 예비협상을 개시했다. 그러나 3루까지 도루해도 홈스틸을 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FTA의 홈스틸은 바로 남북 FTA였다.”






 김현종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통상교섭본부를 맡았다. 칠레, 싱가포르, 캐나다, 인도, 멕시코, MERCOSUR(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 공동시장), 걸프협력회의(GCC), 싱가포르, EFTA, 아세안, 그리고 미국. 그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은 3년 동안 협상을 진행시킨 국가 혹은 국가연합들이다.



 이 중 싱가포르, EFTA, 아세안, 미국과의 협상이 그의 재임 중 타결됐다. 8년 전만 해도 단 한 개의 FTA도 맺지 않았던 한국은 지금 45개국(EU 27개국, 아세안 10개국, EFTA 4개국 포함)과 FTA를 체결하고 있다. 아직 중국이 17개국, 일본이 15개 국가와 FTA를 맺고 있음을 감안하면 김현종의 ‘동시다발적 FTA 전략’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캐나다와 먼저 FTA 협상을 벌여 우회적으로 미국을 압박해 협상장에 끌어냈던 전략가”라고 그를 평가한다. 그런 김현종이 2003년 FTA 로드맵을 작성할 때부터 지향한 건 ‘통일’이었다고 말한다.



노무현, “북한하고 FTA를?”



 국가 전략의 하나로 검토됐던 남북 FTA 구상이었던 만큼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그가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에게 남북 FTA 구상을 보고한 건 2007년 5월. 그해 10월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5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이 배석한 자리에서 노 대통령과 김현종의 대화는 이랬다고 한다.



김현종=“대통령님, 중요한 FTA를 하나 더 했으면 합니다.”



노무현=“어디하고?”



김현종=“남북 FTA를 하시죠.”



노무현=“응? 남북 FTA?”



김현종=“통일로 가는 길이 여러 가지 있는데 FTA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내 귀가 지금 솔깃한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세요. 북한하고도 FTA가 가능합니까?”



김현종=“예, 북한과 FTA를 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홍콩, 중국과 마카오가 FTA를 했습니다.”



노무현=“음…. 그렇네.”






 2007년 중국은 이미 홍콩, 마카오와 사실상의 FTA를 체결한 상태였다. 중국과 홍콩은 2003년 6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맺었다. 일국양체제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국가 대 국가의 협정인 FTA가 아니라 비조약적 성격의 CEPA로 대신했을 뿐 사실상의 FTA였다.



 2010년 6월 중국은 다시 대만과 일종의 FTA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한다. 중국 539개, 대만 267개 품목을 각각 조기자유화 품목으로 지정해 3년 이내에 단계적으로 수입관세를 철폐하기로 함으로써 양안(兩岸) 간 무관세 수출의 길을 열었다. 중국이 대만과 FTA를 체결한 이유도 궁극적으론 통일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게 통상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상품에 HS코드를 심어라



 노 대통령에게 김현종은 남북 FTA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는 남북 FTA를 했을 때 북한이 얻게 될 이점을 노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정리해 줬다.



 첫째는 HS코드 문제였다. HS코드란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를 말한다. 1988년 국제협약으로 채택된 HS코드는 모든 무역거래 상품을 숫자화한 코드로 분류한 것이다.



 가령 컴퓨터에 사용되는 ‘마우스’의 한국 HS코드는 8471601030이다. 84는 기계, 71은 자동자료처리기, 60은 입력 및 출력장치에 대한 국제공통의 분류코드다. 뒤의 네 자리 숫자 중 10은 입력장치, 30은 마우스에 대한 한국의 분류 숫자다. 이런 긴 숫자를 매기는 것은 관세율을 적용할 때 일관성과 신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남북 FTA를 하게 되면 북한도 이런 체제가 만들어지고 체계적인 무역이 쉬워진다고 김현종은 설명했다. 북한 경제를 국제화로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둘째는 원산지 규정 문제. 원산지 규정이란 상품의 국적을 판정하는 기준을 말한다. 북한은 이런 규정이나 분류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한국과 북한은 ‘무관세 거래’를 해 왔다. 이 때문에 특히 중국 상품이 북한을 통해 한국에 무관세로 수입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중국업체는 북한에서 아무런 부가가치를 덧붙이지 않은 채 상품을 한국에 수출함으로써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북한엔 원산지 규정이 없으니 한국으로 넘어온 물건이 중국산인지, 북한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김현종은 이게 북한엔 독(毒)이 된다고 봤다. 중국 업체들은 굳이 북한에 공장을 세워 돌릴 필요 없이 중국 상품을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실어나르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북한에 투자할 인센티브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남북 FTA를 하면 북한에 원산지 규정 체제를 세울 수 있고, 그것이 북한의 외국인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게 김현종의 논리였다.



남북 FTA로 ‘대북 퍼주기’ 논란을 잠재우려 하다



 남북 FTA를 했을 때 북한뿐 아니라 한국에도 이로운 점이 물론 노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무엇보다 한국과 선진국 간에 ‘최혜국 대우’를 둘러싼 갈등 소지가 제거된다는 점이다. 최혜국 대우란 한 나라가 기존에 다른 나라에 부여하고 있는 대우 중 가장 유리한 조건의 대우를 협상이나 조약 상대국에 적용해주는 걸 말한다. ‘한국은 북한에 무관세 혜택을 주고 있으니, 우리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는 게 선진국들의 주장이었다. 국제관례인 최혜국 대우를 근거로 전면적인 관세 철폐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이유로 내세웠다. 한국은 헌법 3조에 북한을 우리 영토에 포함시키고 있다. 또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상 북한과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고, 남북 간 거래는 국가와 국가 간 무역거래가 아니라 ‘민족 내부의 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논리가 약했다.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두 개의 국가로 동시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명백히 하나의 국가로 인정된다. 이 지점에서 선진국과의 마찰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FTA를 하면 북한과의 무관세 거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 김현종의 주장이었다.



 이에 더해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 여론도 잠재울 수 있다고 김현종은 판단했다. 당시 보수진영은 남북경제협력을 실질적 효과가 없는 ‘퍼주기’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남북 FTA를 할 경우 이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까지 마련하고 있었다. 그의 회고록에 나와 있는 남북 FTA의 구체적인 그림은 이랬다.



 “서울에서 북한을 통과해 중국과 러시아 국경까지의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남북 FTA에 포함시킬 수 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에서 서베를린까지 통행로를 냈던 것과 비슷하다. 북한에 매장돼 있는 광물의 잠재 가치는 3719조원으로 추정된다. 고속도로 공사비는 북한에 많이 매장된 마그네슘·철광석·우라늄으로 받을 수 있다. 육로를 통해 외국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북한이 차량 통행료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북한 주민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현대·기아차를 보면서 바깥 세상을 더 알게 될 것이고 한국의 젊은이들은 육로로 중국, 러시아로 여행할 수 있어 섬나라 같은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종의 설명을 듣던 노 대통령은 무릎을 쳤다고 한다.



 “신기하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그러면서 당시 배석했던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에게 “이거 아주 흥미로운데. 이 실장, 다음 주 실장들과 회의해 봅시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남북 FTA 구상에 대해선 내부에서 찬반 논란이 격했다고 한다. 시기상조 또는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예컨대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지금도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상 북한과의 FTA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김정일과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남북 FTA 문제를 꺼냈다는 사실은 당시의 내부 논란에서 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결국 남북 FTA는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였다.



통상은 경제 더하기 정치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의 FTA 협상에 나서던 김현종에게 “철저하게 장사꾼 논리로 협상하고 한·미동맹 관계나 정치적 요소들은 절대로 의식하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건 꽤 알려진 얘기다. 한마디로 FTA 협상의 가장 큰 원칙은 ‘장사꾼 논리’다.



 그러나 통상(通商)은 ‘경제 더하기 정치’다.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는 2007년 3월, 미국과의 FTA 막바지 협상에 나서려는 김현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미 FTA는 꼭 타결되어야 합니다. 정치 스케줄상 한·미 FTA가 1번 타자입니다. 그 다음 6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의 양자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 후 남북 정상회담이 있을 것입니다. 다음 단계로 4개국(남북한과 미국·중국) 간 평화정상회담을 해야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가 확고해야 합니다.”



 이해찬 총리의 정치 스케줄은 한·미 FTA→북미양자대화→남북 정상회담까지만 진행된 채 멈춰버리고 말았지만 FTA는 외교안보적·정치적 고려가 담길 수밖에 없는 국가 전략이다.



 한·미 FTA 발효 첫날인 지난 15일 김현종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의 재협상에서 (이명박 정부가) 많이 양보해 아쉬운 면은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는 (농업 등) 피해 분야에 대한 지원대책을 확실히 마련해야 되고, 한·미 FTA 혜택이 사회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될 수 있도록 국내 제도를 보완해야 할 의무가 있다.”



 17일로 한·미 FTA가 발효된 지 사흘째다. 김현종의 ‘FTA 로드맵’에 따르면 한국은 막 2루에서 3루까지 진루한 상태다. 그러나 김현종을 비롯한 FTA 협상가들에겐 견제구가 뿌려지고 있다. ‘매국노’란 이름의 빈볼까지 난무한다. 남북 FTA라는 홈스틸로 득점을 올릴 생각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다.



 그러나 목적 달성이 어려워졌다고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잊혀져선 안 된다. 3루에서 한국이 봐야 할 곳은 홈뿐이다. 3루에서 2루로 도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무현의 FTA 말말말



2007년 4월 2일 한·미 FTA 대국민 담화문




 “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이며 국가 경쟁력의 문제다.”



2007년 8월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



 “ 지배받지 않으려면, 지배력에 대항하려면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통상국가가 돼야 한다. 그래서 개방하고, FTA도 해야 한다.”



2008년 8월 오마이뉴스 인터뷰



 “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미 FTA는) 약간 ‘도전적인 선택’으로 적절하다고 본다.”



2008년 11월 인터넷 홈페이지 ‘민주주의 2.0’



 “걸핏하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들이대는 건 합리적 태도가 아니다. 저는 ‘너 신자유주의자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 빨갱이지?’이런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저는 FTA를 한다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



2009년 발간된 저서 『성공과 좌절』



 “개방 문제와 관련해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 이후에 사실로 증명된 것이 없다. 1980년대 초반의 외채 망국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맞지 않았다. WTO(세계무역기구) 가입도 반대했는데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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