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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마르크스 얘기하던 운동권 후배가 이젠 공자를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단국대 석좌교수
며칠 전 흥미로운 신문기사를 만났다. 1970~ 80년대 독재타도를 외치며 투쟁하다가 몇 차례 투옥되면서 싸우던 투사 세 명의 이야기였다. 한때 공자와 맹자를 보수반동으로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나 이제 보니 진보적 평등사상이 거기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 젊은 시절에 그런 인문학공부를 하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 『논어』를 모르고는 이웃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었다.



특별기고

 유년시절부터 유교주의자이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택으로 『소학』『대학』을 배우고 조금 커서는 평생토록 『논어』만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늦게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운동권 후배들의 뜻에 고마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신자유주의에 함몰돼 권력욕과 물신주의만 판치는 이런 막된 세상에서 동양의 고전을 통해 인간다운 세상과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해보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독재와 싸우며 투옥됐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논어』와 『맹자』를 즐겨 읽었고, 다산(茶山)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그래도 후회되지 않는 일중의 하나임을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논어』에 평등사상의 진보적 논리가 있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공자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나 배움과 노력의 여하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라고 선언했다. ‘유교무류(有敎無類)’라는 네 글자에 평등사상이 통째로 담겨 있다. 교육이 있을 뿐이지 종류가 따로 없다는 말, 다산은 바로 이 네 글자에서 자신의 평등사상을 마음 놓고 부르짖을 수 있었다. 다산이 “왕후장상이 어디 따로 있으며, 부자라고 대대로 부자가 돼야 하며, 서족이나 천민은 그 계급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항변했던 것도 모두 ‘유교무류’ 네 글자에 근거하고 있었다.



 공자는 신분의 평등만을 주장하지 않았다. 경제적 평등도 강력히 주장했다. “불환빈이환불균(不患貧而患不均)”이라 말하여 가난을 걱정할 이유가 없고 균등하게 분배되지 못함에 근심이 있다고 주장한 점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빈부격차의 갈등구조, 이런 양극화의 지나침이 인류의 근심이지 가난 따위야 균등한 분배만 이룩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뜻이었다. 신분적 평등, 경제적 평등, 이런 인류의 다함없는 바람을 한없이 그리워했으니 공자 이상의 진보주의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인류의 가장 큰 죄악의 하나는 잘난 척 하고 싶고 남이 자기를 알아주라는 무한한 욕구에서 나온다. 전쟁·갈등·모함·당쟁 등 싸움의 근본에는 제 잘남이 도사리고 있다. 자기는 잘나고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데 남들이 그런 점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온갖 파탄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점을 2500년 전에 간파한 공자,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사람이 군자니라(人不知而不<614D> 不亦君子乎)”라고 주장하여 분쟁종식의 가장 옳은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유아독존의 잘남, 그 잘남 때문에 인간의 불화는 시작됨을 우리는 명확히 알고 있다. 사치와 낭비, 신분과시, 부의 자랑, 모두가 자기 조금 알아주라고 보여주는 퍼포먼스 때문에 갈등과 불화는 그치지 않는 것이다.



 『논어』가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책인가는 송나라의 정자(程子)가 이미 설파한 말에 담겨있다. 정자는 17~18세에 『논어』를 읽고 나서 “모르는 사이에 손과 발로 무도(舞蹈)를 했다(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라고 말하여 논어의 재미에 빠져 저절로 덩실덩실 춤을 추고 말았다는 고백을 하였다. 다산도 제자에게 주는 편지에서 모든 경전은 다 읽어야 하지만 “유독 논어만은 종신토록 읽어야 한다(唯論語可以終身讀)”라고 말하여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읽어야 할 책이 논어라고 강조했었다.



 “이 나라에서 똑똑하다는 사람 대부분 만났는데 고전을 제대로 읽은 이를 보지 못했다. 건방진 예단일지 모르지만 이 지적 황폐가 지성인들의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라고



『논어』로 돌아간 운동권 인사의 말에 동조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전과 인문학에 너무 멀리 있는 현대의 지도자들, 구인(求仁)과 수양(修養)은 『논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던 율곡(栗谷) 이이의 충고를 받아드려서라도 『논어』 읽기를 권장해마지 않는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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