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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그게 보여야 진짜 봄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 “한 번 더 하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하지만 진짜 한 번 더 했으면 난 인간적으로 완전히 파멸했을 거예요. 건방지다 못해 교만에 꽉 차서 내가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겁니다.” 미 연방 하원의원에 내리 세 번 당선됐던 김창준 박사가 네 번째 출마해 낙선한 후 있었던 일을 며칠 전 JTBC ‘정진홍의 휴먼파워’ 촬영 때 얘기하며 한 말이다. 자고로 멈출 때 멈추고, 그칠 때 그칠 줄 아는 것은 최고의 지혜요 지략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칼집이 없으면 잘 드는 칼에 내가 베이고,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잘나가는 차가 사고 치는 법! 내쳐 잘나갈 때 제어할 방법이 없으면 그것이 모든 화의 근원이 되는 것은 세상이치다.



 # 김창준! 그는 삼선(三選) 이상 하지 않겠노라고 미국의 동료 의원들과 함께 선서까지 해놓은 상태였지만 “그것을 누가 기억하랴”하고는 네 번째 출마를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하지만 낙선은 낙선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자금 의혹의 소용돌이 속에서 애써 키워온 회사도 거덜나고 가정마저 파탄이 나고서야 잠잠해졌다. 그는 정말이지 살고 싶지 않았다. 자살도 생각했다. 다른 식으로 죽는 것은 구차해 보여 총으로 깨끗이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총을 살 돈도 없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았다. 호주머니에는 단돈 200달러뿐이었다. 50년 전 그가 미국 갈 때 가져갔던 돈이 200달러였으니 어찌 보면 원점회귀를 한 셈이었다.



 # 맨손으로 미국 가서 연방 의원이 되기까지 그는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 단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다. 삶은 도전해볼 만한 것이었고 노력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보상이 왔다. 먹고 살길 막막해 접시만 닦던 고학생이 신문사 지국장이 돼 부자들이나 다니는 명문 사립대를 다니고, 졸업도 하기 전에 취직하고 마침내는 전공을 살려 상하수도 설비를 설계하는 회사를 세워 승승장구했다. 백인들만 사는 동네에서 시의원이 되고 다시 시장이 됐다. “동양계가 어디 백인 도시에서 시장을 하느냐”고 힐난하며 나가라고 협박하는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급기야 인구 8만 명의 작은 도시의 시장에서 62만 명을 대변하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삶은 거칠 것이 없었다. 박수갈채와 환호와 카메라 플래시 세례는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해외를 나다닐 때마다 받게 된 미 연방 하원의원에 대한 극진한 예우까지 더해져서 그는 그 삶에 푹 취해 있었다. 하지만 추락은 취하고 난 다음에 오는 것임을 그땐 몰랐다.



 # 완전히 추락한 후 그가 다시 찾은 곳은 어릴 때 놀던 서울 인왕산 자락의 골목길이었다. 산등성이 아래 골목길에 드문드문 핀 꽃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미 연방 하원의원 배지를 달고 위세를 피우던 때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후, 아니 모든 것을 잃은 다음 비로소 그 보잘것없는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고백하듯 말했다. “화려한 성공이란 겉껍데기를 다 벗어버리자, 텅 빈 가슴속으로 꽃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렇다. 그 꽃이 보여야 비로소 진짜 자기인생이다.



 # 기상청에 따르면 봄의 전령사인 개나리가 오늘부터 제주 서귀포에서 피기 시작해 북상을 개시한다. 예년보다는 2~3일 느린 것이라지만 곧 봄소식을 알리는 개나리의 활짝 핀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게 될 듯싶다. 그런데 봄이 왜 봄인가? 보아서 ‘봄’이고 또 보여야 ‘봄’이다. 하지만 봄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그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며, 노오란 개나리와 연분홍빛 진달래가 봄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교만과 분노 앞에서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 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이에게 그것은 가장 먼저 보이고 다가온다. 그게 보여야 진짜 봄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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