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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쳤어요" 순수한 아줌마 불륜에 중년 열광





















이들의 사랑엔 구구한 말이 필요 없었다. 태오(이성재)가 서래(김희애)를 끌어안기 직전 했던 말이란 “이게 진짜 별일이네요. 이상합니다.” 그 뿐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탐하면서 두 사람은 누구의 엄마, 아빠가 아닌 사랑에 갈급한 여자와 남자가 됐다.

 불현듯 가슴에 박힌 사랑, 판타지는 그렇게 시작됐다. JTBC 수목 미니시리즈 ‘아내의 자격(밤 8시 45분)’이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1.79%(AGB닐슨 수도권 가구)를 기록하며 뭇 중년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특히 40~50대 여성 시청자들이 전체 시청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인터넷에는 “자녀 입시로 머리가 아픈데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니 스릴이 넘친다” “실제 대치동 학부모들의 모습과 비슷해서 마치 내가 서래가 된 듯 하다” 등 공감의 댓글이 주를 이룬다. ‘아내의 자격’이 이 시대 고단한 중년들의 마음을 건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대치동은 망국동?”=‘아내의 자격’의 크게 두 줄기로 구성됐다. 우선 교육문제다. 대한민국 사교육 열풍을 충실하게 보여주며 리얼리티를 높였다. 드라마는 서래네 가족이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의 사교육을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오면서 시작된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첨단에 서 있는 이곳의 살벌한 풍경은 현실을 그대로 옮긴 듯 하다.

 예컨대 서울대보다 가기 어렵다는 국제중에 보내기 위해 대치동 엄마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벌인다. 자녀를 학교에 보낸 후 카페에 모여 정보를 수집하고, 실력 있는 개인 강사를 섭외하려고 온갖 로비를 마다하지 않는다. 내 아이의 수업 진도를 방해한다면 친구도 필요 없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그것이 엄마들의 지상 최대 과제다.

 병약한 아이를 소신껏 키우고 싶었던 서래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으로 매도된다. 그러면서도 서래의 고군분투기를 연민의 눈길로 쳐다본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사교육의 굴레’ 대한민국 엄마, 아빠들이 공감하는 이유다.

 ◆“정신이 나간 것 같아요”=갑갑한 현실에 옥죄인 서래. 그에게 치과의사 태오가 예고 없이 다가온다. 이후 서래와 태오의 사랑이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태오는 “흙에서 뒹굴고, 새 이름, 벌레 이름 부르면서 아이랑 살았다”는 서래의 순수한 모습에 끌리고, 서래는 진료 봉사를 다니면서 ‘돈’보다는 ‘정’이란 가치에 충실한 태오에게 호감을 느낀다.

 의사들의 권력문제를 파고들었던 ‘하얀거탑’의 안판석 감독은 이번에 사랑의 불가역성에 집중한다. 낡고 흔한 불륜이 아니다. 사랑의 원시성을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1960~70년대의 올드팝이 정감 있게 흐르고, 화면은 ‘뽀샵’ 처리를 한 듯 말랑말랑하다.

 “저 미쳤어요! 집에 시댁 식구들 다 와 있는데 거짓말 하고 나왔어요. 어떻게든 김태오씨 만나고 싶어서요”라고 울부짖는 서래에게 뜨겁게 키스하는 태오의 모습도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김희애의 미세한 감정연기와 카리스마를 내려놓은 이성재의 편한 생활연기가 중년들의 판타지를 제대로 구현해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음이 병든 한국인=‘아내의 자격’에 나오는 배역들은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하나같이 결핍된 사람들이다. 예컨대 서래의 남편 상진(장현성)은 ‘사교육 열풍은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고발하는 기자이지만 자신의 아들을 그 경쟁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는 학부모다. 서래의 시누이 명진(최은경)은 슈퍼맘을 꿈꾸며 딸아이를 국제중에 보내는 것에 성공하지만 경쟁에 도태된 사람을 헐뜯고 무시하는 ‘괴물’이 됐다.

 사교육계를 주름잡는 학원강사 지선(이태란)은 어떤가. ‘지선학원’을 경영하며 부와 명예를 얻지만 정작 남편인 태오의 ‘마음 속 갈증’은 읽지 못한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삶의 균열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군상들인 셈이다. 어쩌면 지금 여기. 많은 도시인들의 자화상일 터다.

 공희정 평론가는 “태오와 서래의 사랑이 비록 불륜의 틀에 있지만,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포장된 삶보다는 순수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서래의 말말말

“미쳤어요 제가! 집에 시댁 식구들 다 와 있는데 거짓말하고 나왔어요. 결혼해서 단 한 번도 안해본 짓이예요. … 애 학원에선, 애 때문에 의논 좀 하자는데 그냥 내뺐어요. 그 학원 보내려고 온갖 짓을 다 하고, 원장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마땅한데, 도망쳤다고요. 어떻게든 김태오씨 만나고 싶어서요. 지금 원장이 전화 하라는데도 안하고 싶어요. 내일 하고 싶어요. 말도 안되는 일이예요. 정신이 나간 거예요.”

(태오에게 마음을 고백하면서)

 
 “결(아들)이가 어릴 때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저는 같이 즐겁고 행복한 게 제일 중요했죠. … 같이 흙강아지로 뒹굴고, 새 이름 벌레 이름 부르면서 살았죠. 그런데 애가 웬만해지니까, 욕심이 생겼나봐요. 지금은 이렇게 황새 엄마들 따라 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보면. 바보라는 소리 들으면서도 굳세게 버텼는데, 어쩔 수가 없죠. 세상 기준을 무시해선 또 안되니까.”

(태오에게 아들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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