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세상읽기] 중국, 정치개혁 없이 경제성장 없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예수가 하이루펑(海陸豊)에 있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무엇을 명령했을까?’ 1920년대 후반 중국 공산당 내의 조선인 혁명가 김산(金山)에게 든 의문이다. 김산은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이다. 그는 당시 광둥(廣東)성 하이루펑 혁명재판소의 위원으로 있었다. 임무는 농부들이 붙잡아 온 사람이 ‘계급의 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 외국인이라 보다 객관적일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하루는 순진해 보이는 청년이 잡혀 왔다. 미끈한 손을 가졌으니 지주의 자식이란 것이었다. 김산은 고민했다. 그러자 하이루펑의 지도자 펑파이(彭湃)가 충고했다. “의심날 때는 보다 적게가 아니라 보다 많이 죽여야 한다.” 김산은 처형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예수는 하이루펑에 ‘눈물이 아닌 칼을 주러 왔을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가 민중을 갈취하는 지주를 미워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청년의 양쪽 팔엔 어머니와 누이가 매달려 있었다.

중국 민주혁명의 진원지로 관심을 모으는 광둥성 우칸촌의 주민들이 지난해 말 공산당 간부의 불법 토지매각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민들이 들고 있는 흰 천에는 시위 도중 의문사한 한 마을 주민의 죽음을 은폐하지 말라는 내용의 문구가 씌어 있다. [우칸 AFP=연합뉴스]

 김산이 활동한 하이루펑(하이펑과 루펑으로 구성)은 중국 공산혁명의 성지다. 중국 공산당이 통치하는 소비에트 해방구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곳에 건설됐기 때문이다. 지도자 펑파이는 지주집안 출신에 일본 유학까지 했다. 그러나 조상이 물려준 토지문서를 불사르고 공산주의자로 변신했다. ‘토호를 때려잡자’며. 마오쩌둥(毛澤東)은 그를 ‘중국 농민운동의 대왕’으로 불렀다.

 하이루펑이 다시 중국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 이번엔 민주혁명의 전초기지로서다. 진원지는 루펑(陸豊)에 속한 우칸(烏坎)촌. 배경엔 촌의 공산당 간부가 자신의 계급기반인 농민을 배반하고 토호로 변신한 작태가 깔려 있다. 우칸에 민주혁명의 불꽃이 튀기 시작한 건 지난해 가을부터다. 외지에서 품을 팔다 돌아온 우칸 촌민은 고향에 농사지을 땅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선거도 없이 40년 넘게 촌 서기로 군림하던 쉐창(薛昌)이 축구장 350개를 세울 크기의 농지를 곶감 빼먹듯 하나 둘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팔아치운 것이다. 지난해 9월과 11월 우칸에서 두 차례 시위가 벌어졌을 때만 해도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민시위로 치부됐다. 그러나 12월 들어 한 시위 주동자가 당국에 납치된 뒤 이틀 만에 시체로 변하면서 우칸의 분노가 폭발했다. 촌민은 당 조직과 공안(경찰)을 몰아낸 뒤 해방구를 선포했고, 공안은 도로를 봉쇄해 촌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을 차단했다.

 중국에선 한 해 10만 건 이상의 시위가 벌어진다. 이 중 토지 관련 시위가 65%에 달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대개 이렇다. ‘당국이 매스컴을 침묵시킨다. 여론이 잠잠해진다. 신속하게 시위 주동자를 체포해 사건을 마무리한다’. 우칸은 달랐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이용해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외국 기자의 잠입을 도와 촌민과 공안의 대치를 국제적으로 생중계했다. 국내외적 여론몰이에 성공한 것이다.

 돌파구는 광둥성 당서기 왕양(汪洋)이 열었다. 측근을 현장에 보내 수배 대상이던 시위 주동자를 촌 서기에 임명하는 파격 조치로 민심을 얻었다. 특히 주목을 받은 건 촌민의 직접선거로 촌 지도부를 구성케 한 점이다. 물론 그전에도 선거는 있었다. 그러나 촌민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진정한 한 표를 행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중국의 봄’이 오고 있다는 섣부른 기대를 낳게 하는 배경이다.

 서방 언론은 다소 회의적이다. 우칸의 민주쟁취가 지방의 부패관리에게 저항하는 차원이지 중앙정부에 도전하는 수준은 아니란 것이다. 찻잔 속 태풍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중국에 일기 시작한 변화의 싹을 무시할 수는 없다. 푸젠(福建)성의 한 마을에선 이미 4명의 대표를 우칸에 파견해 ‘우칸 경험’ 배우기에 나섰다. 과거 덩샤오핑(鄧小平)의 경제개혁은 안후이(安徽)성의 한 작은 마을이 이룩한 성공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중국의 민주화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우칸 사태는 현재 중국의 핵심 병폐를 보여준다. 관료부패다. 특권을 쥔 간부(관리)가 기업과 결탁해 인민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형태가 만연하고 있다. 공산당 일당제 아래서 공산당 간부의 부패를 견제할 효과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민을 경제논리로 풀 때가 지났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중국 최고의 경제학자인 82세 고령의 우징롄(吳敬璉)이 “정치개혁 없이는 경제개혁도 없다”고 부르짖는 이유다.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피 묻은(帶血的) GDP’라는 게 있다. 괄목할 만한 성장 뒤엔 인권의 희생이라는, 즉 수많은 인민의 피와 눈물이 고여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 정부 업무보고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5%로 낮춘다고 밝혔다. 8%를 지킨다는 전통적인 ‘바오바(保八)’ 정책에서 후퇴한 것이다. 대신 정치개혁을 포함해 개혁만 60차례 이상 언급했다.

 성장 속도를 늦추더라도 민주선거, 법치확립, 인권존중 등 중국의 민주화를 한 단계 더 진척시키자는 것이다. ‘고성장 저(低)인권’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자는 각오다. 그래야 성장도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한 걸음 물러서면 세상은 넓어진다(退一步海闊天高). 더 넓은 바다, 더 높은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열흘간의 회의를 끝으로 오늘 폐막하는 전인대에서 엿볼 수 있는 메시지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