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경제 view &] 기업이 ‘죽음의 계곡’ 넘으려면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
한국 경제 발전상을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경제학적 해석을 빌리자면 리카도의 ‘비교생산비 이론’이나 헥셔-오린의 ‘요소부존 이론’이 성립되지 않는 예외적 사례라는 것이다. 노동력은 풍부하고 자본은 부족하므로 노동집약적 산업에 특화해야 하는데, 자본집약적 산업에 특화해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노동·자본·토지가 주된 생산요소였던 19세기 말~20세기 초, 리카도 시대의 시각에서 보면 맞는 설명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한국은 정부·기업·국민의 역량이 향상되고 외국자본 유입이 증가하는 등 요소부존 상태에 큰 변화가 있었다. 기적이 아니라 한국이 가진 탁월한 역량(input)에 비례한 성과(output)였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국 문화에 뿌리를 둔 이 성공 인자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 지속적 발전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런 성공 인자의 하나가 교육열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이 한국 경쟁력의 튼튼한 기초를 이룬다. 산업화에 일찍 눈뜨지는 못했지만 학문을 숭상해 온 전통이 단기간 내에 산업인력을 키워낸 원천이 됐다. 세계 1위 대학 진학률이 말해주듯 한국의 부모들은 지금도 “자식을 낳으면 한양으로 보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자식 농사’를 위해서는 기둥뿌리도 뽑는다. 젊은 세대는 암기교육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한류를 창조해 냈다. 이들에게 창의력 교육이 더해진다면 한국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협업의 문화도 중요한 요소다.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조직 충성도가 높은 데다 조직 내 협업은 최고 경지에 있다. 선진국들과의 격차나 개도국들의 추격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처럼 정교하게 부서 간이나 공정 간에 협업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문화의 영역이다. 메모리 반도체나 조선산업처럼 고도의 공정일수록 협업의 성과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여러 성공 인자 중에 무엇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비교우위인 듯하다. 스피드의 효과는 여러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후발주자로서 거의 모든 산업의 중급시장 추격전에서 성공해 제조업 및 수출대국이 됐다. 스피드가 결정적 요소인 디지털 산업에서는 이미 최강자로 부상했고, 디지털 융복합화 부문에서도 성공기회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한국 기업의 도전이 때론 실패를 낳기도 하지만, 실패 경험도 유용한 자산이 되는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마침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확고한 승자로 남았다. 일부에서 이 경쟁을 ‘치킨게임’의 결과로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국 기업들로서는 우월한 경쟁을 해 온 당연한 귀결이다. 이들은 메모리 산업의 성공 요소인 도전·혁신·협업·스피드 같은 역량을 가장 잘 갖췄다. 천문학적 투자와 극심한 사이클을 감내하는 도전정신, 외국기술 도입 후 수년 내에 자체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이후 더 높은 수준의 혁신을 이어가는 능력, 제품기획에서 매출까지 모든 부서 간의 이음새 없는 협업문화, 그리고 1~2년마다 차세대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스피드 역량을 보여줬다. 요소부존 이론상 해외의 어떤 기업도 한국 기업을 능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업성공을 위해서는 3개의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어야 한다. 기술개발, 대량생산, 매출에서의 성공이 그것이다. 게다가 기술이나 제품수명 주기가 짧아지고 있어 이 계곡을 빠른 속도로 넘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도 고객수요에 맞춘 적기의 제품출시(time to market)를 하지 못해 사업 자체를 접는 사례가 흔하다. 스피드가 문제다. 한편 한국 기업 중에는 스피드에 급급해 기술이나 제품완성도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스피드와 철저함을 모두 갖춰야 고급품(high-end)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선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인 것이다.

 채드 홀리데이 듀폰 회장도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스피드”라고 했다. 그러한 스피드가 정부나 정치권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정부는 지원이나 개입은 최소화하고, 기업이 끝없이 도전할 수 있는 여건, 실패와 패자부활전이 용인되는 시장환경 조성에 주력해야 한다. 정책만능주의를 풍자하는 재계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정부에 정책이 있다면 기업에는 대책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비(非)시장적 ‘정책’을 피해가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불필요하게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기업들이 핵심 경쟁요소인 스피드를 살릴 수 있도록 온 국민이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성원을 보내 줄 때다.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