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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57) 불발로 끝난 ‘이헌재 펀드’

2004년 3월 7일 우리금융 회장추천위원회는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을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한다. 이헌재 당시 부총리는 황 회장에게 “우리금융 민영화에 전력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회장에 추천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황영기 회장(왼쪽). [중앙포토]

경제부총리로 노무현 정부에 입각하기 전 나는 한 가지 일로 바빴다. ‘이헌재 펀드’라 알려진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2003년 12월, ‘이헌재가 우리금융지주 인수를 위해 3조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조성 중’이란 기사가 언론에 일제히 났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우리금융을 민영화하려 한 건 맞다. 우리금융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놓고 회수하지 못했다. 회수하지 못했다뿐인가. 1차 투입한 공적자금 5조여원이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내가 정부를 물러난 2000년 12월, 완전 감자(減資)됐다. 자본금을 모두 소각하는 완전 감자. 2차 금융 구조조정의 여파였다. 내가 정부에 있었다면 어떻게든 막았을 것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한 은행은 일단 정부의 책임하에 들어온 셈이다. 이 회사에 투자한 주주는 정부를 믿고 돈을 넣은 거다. 그런데 “부실이 너무 크다”며 모든 주주의 주식을 소각했다. 추가로 공적자금을 2조7000억원 더 넣는 대가였다. 공적자금의 전제조건은 두 가지다. 감자 아니면 구조조정. 정부는 이미 구조조정에 지쳐 있었다. 금융노조와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한 상태다. 그래서 손쉬운 감자를 택한 것이다. 기왕 소각하려면 정부 지분만 더 많이 소각할 일이었다. 민간 주주가 무슨 죄인가. 김진만 당시 한빛은행장은 해외까지 나가 “믿어달라”며 10억 달러를 끌어오기도 했다. 따지고 싶었지만 정부에 목소리를 낼 형편이 아니었다.

 DJ 임기가 끝나려 하니 조바심이 났다. 두 차례에 걸쳐 8조원 정도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이다. 공적자금이 회수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해서 잠깐 국민 세금을 빌려주는 게 공적자금이다. 급한 불을 껐다 싶으면 바로 회수해야 한다. 안 그러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지난 정권이 한 일”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며 미루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씨티·JP모건 등 미국 초대형 금융그룹을 보라. 경영이 정상화된다 싶으니 바로 공적자금을 조기 상환했다.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나라도 나서고 싶었다. 내가 주도해 국유화한 은행이었다. 의무감 같은 걸 느꼈다. 2001년 가을, 박선숙 당시 청와대 공보기획비서관을 만나 넌지시 운을 뗐다. “우리은행 민영화 계획이 없으면 내가 진행시켜볼 테니 한번 알아봐주시오.“ 박선숙이 곧 전했다. “위에서 좋은 생각이 있다고 해요.” 정부가 복안이 있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알았다” 하고 손을 뗐다.

 어떤 계획일지 궁금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보통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법대로 하면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있는 국내 자본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 금융 주력가가 아닌 주주는 은행 지분의 4% 이상(현재는 9%)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한 은행법 때문이다.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이 법 때문에 은행 지분을 대량으로 넘길 곳은 외국계 금융사밖에 없었다. 이미 제일은행을 미국 투자펀드에 팔았던 경험이 있다. 또 하나의 대표 은행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증시에 내다 팔 수도 없다. 한꺼번에 쏟아내면 가격이 폭락하기 마련. 제 값 받기 어려워지기 십상이다.

 혼자 궁리해 짜낸 해결책이 ‘연합 컨소시엄’이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이헌재 펀드’가 아닌 ‘이헌재식 컨소시엄’이라고 할까. 직접 투자자는 물론 은행 신탁계정, 생명보험 자금, 공제회 자금, 우체국 예금에 각종 연기금과 기업의 운용자금 등을 모두 끌어들일 계획이었다. 어차피 굴려야 할 돈, 이를 모아 지분 4% 미만 펀드를 여러 개 만든다. 그렇게 만든 펀드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부 지분을 한꺼번에 산다. 주식이 한번에 풀리는 걸 막기 위해 록업(lock-up·매도금지) 기간을 둔다. 경영권은 주주가 각자 지분에 따라 행사한다. 이렇게 하면 법의 저촉을 받을 일이 없다. 대신 매입하고 남은 정부 지분은 풋옵션을 준다. 일정 기간 뒤 최소 가격을 보장받고 팔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국민주 방식으로 민영화했던 포스코·KT 때도 이런 방식을 도입했더라면 어려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꽤 괜찮았던 모양이다. 비슷한 방식의 금융회사 인수합병이 몇 차례 일어났다. 라응찬 신한 회장은 2003년 조흥은행을 인수할 때 정부에 풋백 옵션을 제안했다. 풋백 기간 동안 신한 주가가 오른 덕분에 정부는 투입한 공적자금의 두 배 넘게 회수할 수 있었다. 하나은행도 서울은행 인수 때 같은 방법을 썼다.

 내가 다시 우리금융 민영화에 착수한 건 2003년 여름이었다. “좋은 방법이 있다”던 DJ 정부는 임기가 끝나도록 민영화를 매듭짓지 못했다. 이번엔 진지하게 나서기로 했다. 머릿속 구상을 적용하기 위해 사람을 모았다. 이윤재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에게 “총괄 책임을 져라”고 부탁했다. 실무 작업은 김영재 전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에게 맡기고 법무법인에 법률적 문제를 검토시켰다. 투자할 만한 회사 대표들을 직접 만나 의사를 타진했다. 6개월여 태핑(의사 타진)으로 3조원이 넘는 규모의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시 우리금융 지분 30% 정도를 인수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내가 우리금융 인수에 나선다고 하자 외국 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먼저 알려오기도 했다.

 갑자기 정부에 들어가며 어쩔 수 없이 이 작업을 중단했다. 재정경제부 장관이 자기 손으로 컨소시엄을 꾸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정책적으로 민영화 작업을 하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카드 사태, 신용불량자 문제에 부동산 문제까지 겹쳤다. 도저히 돌볼 여력이 없었다. 새로 우리금융 회장이 된 황영기에게 “민영화에만 전력을 다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황영기도 임기 중에 이를 끝내지 못하고 떠난다. 내가 정부를 떠나고 채근하는 이가 없어서였을까. 공적자금이 투입된 지 14년째. 우리금융은 아직도 정부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벼르고도 번번이 기회를 놓쳤으니, 공적자금을 처음 투입한 나는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등장인물

▶박선숙(52)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쳐 95년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DJ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대변인을 지냈고, 노무현 정권에서 환경부 차관을 역임했다.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황영기(60)

국제금융 전문가. 삼성회장 비서실 국제금융담당 이사를 거쳐 삼성투자신탁운용과 삼성증권 사장을 지냈다. 2004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을 맡아 우리금융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2008년 KB금융지주 회장을 거쳐 현 차병원그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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