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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전여옥을 버린 새누리당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이념이란 공동체가 항로(航路)로 선택하는 가치다. 국가나 정당에게 이념은 개인의 인생관과 같다. 인생관이 약하면 인생이 방황하듯 이념이 부실하면 정당은 흔들린다. 성장환경이 어려울수록 인생관은 더욱 중요하다. 똑같이 도발적 공산세력과 대치한 나라에게 이념은 더욱 중요하다. 이런 나라에게 ‘탈(脫)이념’은 어려운 환경의 학생이 인생관을 버리는 것과 같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 이념형 정치인은 매우 긴요하다.



 전여옥 의원은 대표적인 이념형 정치인이다. 노무현 정권 때 극렬 진보·좌파가 국가안보와 법·질서를 위협했다. 전여옥은 이에 맞서 싸웠다. 투쟁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계속됐다. 광우병 폭력 여파가 남아 있던 2009년 2월 그는 국회에서 습격을 당했다. 그는 1989년 부산 동의대 사태 때 순직한 경찰관 7명의 명예를 회복해주는 법안을 추진했다. 그러자 동의대 농성 주도 학생들의 가족이 국회에서 그를 공격한 것이다. 전 의원은 각막이 찢어지고 눈 근육이 뒤틀렸다. 전치 8주의 중상이었다.



 갑작스러운 습격 앞에서 전여옥은 한 명의 힘없는 여성이었다. 전사(戰士)이기에 앞서 무장 능력이 없는 50세 아줌마였다. 상처도 깊었지만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 그녀는 밥을 못 먹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면제와 진통제로 버텨야 했다. 병원 침대 속에서 그녀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얼마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을까.



 조직은 조직의 정당한 가치를 수호하다 피해를 당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전여옥처럼 ‘상징적이고 공포스러운 피해’를 입은 이는 더욱 감싸주어야 한다. 그런 국회의원은 웬만한 결점이 있어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천해야 한다. 그런데 전여옥은 하자도 없는데 새누리당은 공천을 주지 않았다. 공천심사위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컷오프 25%’ 얘기가 돌았지만 누구도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당은 전사(戰士) 동지를 이렇게 버렸다.



 공천심사위로서는 전여옥이 부담이었을 것이다. 유일권력 박근혜 위원장과 비상대책위에게 그는 공적 1호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비대위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박근혜 대표 시절 전여옥은 대변인으로 측근이었다. 그러다 2007년 경선을 앞두고 결별을 선언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식이 부족하고 소통이 막혀 있으며 항상 대접 받으려는 ‘왕녀의식’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전여옥은 비대위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종인 위원은 과거 2억1000만원 뇌물을 받아 감옥에 갔고, 이상돈 위원은 당의 적대(敵對) 진영에 있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27세 이준석 위원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존경한다고 할 정도로 정체성이 없고, 황영철 대변인은 한·미 FTA에 반대표를 던진 혼란스러운 인물이라고 그는 공격했다. 전여옥의 이런 지적은 토씨 하나 틀린 게 없다. 그는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말을 했다.



 민주통합당은 한·미 FTA에 긍정적인 장관 출신 의원들에게 공천을 주지 않았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이를 두고 반대자를 내쫓고 패거리당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정당이 정작 자신들의 반대자는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여옥이 허위로 분란을 일으켰다면 문책해야 할 것이다. 비대위나 공천심사위는 그런 건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여론조사’라는 이상한 괴물을 앞세워 동지를 물어뜯었다.



 전사(戰士)를 버리는 부족은 싸움에서 이기기 어렵다. 맨 앞줄에서 싸우다 중상을 입었는데 조직이 버리면 어떤 전사가 선봉에 서겠는가. 비판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큰 그릇이 되기 어렵다. 당에서 내쫓기는 전여옥을 보면서 앞으로 누가 박근혜나 그의 세력에게 ‘노(No)’라고 할 것인가. 박근혜는 테러를 당해봤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 공포를 잘 안다. 3년 전 박근혜가 병실을 찾아 전여옥의 손을 잡았더라면, 그리고 조용히 “같이 조금씩 고쳐나가 보자”고 했더라면 지금 많은 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진정한 그릇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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