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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드라저씨’ 같은 기업은 곤란

김정응
HS애드 상무
어느 토요일 오후다. 집사람도, 애들도 나가고 없고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학원에서 막 돌아온 아들녀석이 가방을 소파에 던져놓고는 나를 딱 보더니 “어! 아무도 없어요?”라고 말한다. 어라, 이놈 봐라? 아무도 없다니 여기 엄연히 아빠가 있는데.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세탁소 주인 아주머니였다. 그 아주머니도 나를 딱 보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아무도 안 계시나 봐요?”라는 게 아닌가. 아무도 없다니. 여기 집주인이 있는데. 아들이나 세탁소 아주머니에게 왜 나는 보이지가 않는가. 나의 그 희미한 존재감에 씁쓸해 했다.



 2년 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도 강연 중 엄마 신드롬의 확산을 거론하면서 위와 거의 똑같은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한 적이 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아빠 혹은 남편의 존재감에 웃음과 박수로 공감을 표시했지만 나에게는 ‘해당 없음’이라고 착각했었다.



 새삼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본능을 가진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해 하고, 존재감 없음에 힘겨워한다. 드라마에 빠져 사극은 물론 10대들이 즐겨 보는 트렌드 드라마까지 섭렵하는 중년 남성을 ‘드라저씨’라고 일컫는다고 하는데, 존재감조차 희미해져 가는 이 땅의 중년 남성들이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며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희미한 존재감에 대한 고민이 중년 남성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젊은층이 많이 쓰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단어 역시 ‘결핍에 따른 보상심리’가 만들어낸 유행이 아닐까 한다.



 존재감 하면 박지성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통산 200경기를 돌파한 박지성 선수에게 팀 동료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특히 루니는 그의 묵묵한 활약이 잘 나타나지 않은 때도 있지만, 맨유 선수들은 그가 얼마나 팀에 헌신적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헌신과 배려가 박지성 선수를 글로벌 존재감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존재감은 ‘남다른 의미 부여하기’를 통해 특별해진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도입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존재감이라는 것은 그렇게 서로에게 의미를 주고 받으면서 만들어지고 커져가는 것이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는 거스름 동전과 식권 등을 모으는 모금함이 있다. ‘LOVE IS EVERYTHING’ 이라는 모금함 이름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남다른 의미 부여가 호소력 짙다.



 비즈니스 역시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어느 음식점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기에도 우리 인생은 짧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손님에게 ‘남다른 의미’를 주기 위해 수백 번 고쳐 쓰고 고민해 만든 ‘존재감’이 역력한 문구다. 다행히 손님이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 장사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음식점 주인도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는 남다른 의미 부여가 존재감이고 경쟁력인 셈이다.



 3월이다. 3월은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한 해의 본격 시작이다.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선에 서 보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 줄 안다면 자신의 존재감도 기지개를 켤 것이다.



김정응 HS애드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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